Episode 6. 권 씨의 자전거

불가사의한 생의 힘

by 박진희

해가 바뀌고 설이 다가오도록 갈재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며칠째 눈이 쏟아지더니 수인의 마당에 쌓인 눈이 무릎을 덮을 지경이다. 이렇게 눈이 쏟아지면 출근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도로가 정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너른 마당의 눈을 사력을 다해 치우고 도로 위까지 차를 올렸다고 하더라도 밤새 얼어버린 도로 위에선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속수무책이다. 도로 위에서 미끄러진 자가용들이 논이나 천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꺼운 먹구름이 빈틈없이 낀 하늘에서 시야를 가릴 정도의 눈이 쏟아진다면 그날 출근은 포기해야 한다. 작년 겨울 정산 업무를 하느라 바깥 상황을 살피지 못했던 수인은 근무하는 동안 너무 많은 양의 눈이 쌓여 눈 속에 갇힐 뻔한 일이 있었다. 제설차가 아무리 부지런히 다녀도 도로 위로 순식간에 눈이 쌓여 버렸다. 폭설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았고, 도로는 미끄럽고, 매일 다니던 길인데도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었다. 퍼붓는 눈이 시야를 온전히 가려버렸던 암흑 속에서의 두려움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눈이 오는 날은 출근하기가 망설여졌다. 수인에게 이곳의 겨울은 10년이 지나도록 익숙해지기는커녕 한 사 개월 동안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오고 싶을 만큼 혹독한 계절이 되어 버렸다.

어제오늘 해가 비췄지만, 눈이 시리도록 하얀 눈은 여전히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다. 그나마 도로와 마을 골목이 부지런한 제설 작업으로 훤하게 길이 나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구간 구간 얼어있는 곳이 있어 차량 운행뿐만 아니라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종종걸음을 면치 못했다.

문화센터는 겨울철엔 설 전까지 정규 프로그램이 없는 관계로 수인은 이 기간에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오늘은 마을회관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권 씨가 오기로 한 날이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안마해주기 위한 방문이다. 매년 겨울 마사지 바우처가 시행되고 있어, 겨울이 오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으로 마사지사가 파견된다. 수인은 마사지를 받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나오신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다. 출근하자마자 어르신들에게 나눠줄 물품을 챙겨 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추운 날씨에도 할머니들이 일찌감치 회관으로 나와 권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날도 추운데 일찍 나오셨네요.”

수인이 회관을 들어서며 할머니들께 인사말을 건넸다.

“워매, 추운디 뭣 하러 나왔소. 우리꺼정 있어도 될 것인디.”

“어르신들 안부도 궁금하고 나눠드릴 지급품도 있어서 겸사겸사 나왔죠.”

수인이 회관에 도착해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권 씨의 자전거가 마을회관 마당으로 들어섰다.

“참말로 길이 미끄러워 위험혔을 것인디…. 참말로 눈에 뭣이 뵈는 게 있는갑소. 우찌 요렇고롬 자전거를 타고 댕기고 그라요.”

올해로 65세가 되는 춘희 할머니가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서는 권 씨를 보고 말했다.

“나가 소경인디 뵈는 게 있을 리가 있것습니까. 살라고 다니는 것이제요. 차를 운전할 수 없으니 요것이라도 타고 다녀야 먹고살 것 아니요.”

어딜 가나 사람들의 얕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불필요한 질문들이 많았지만, 권 씨는 귀찮은 기색 없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사람 좋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요 근처 문화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수인입니다.”

수인이 권 씨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선상님 목소리를 들으니 젊은 분인갑소. 마사지 받을 나이는 아닌 것 같구먼요.”

“네, 오늘 어르신들이 마사지 받으러 나오신다고 해서 궁금해서 나와봤어요.”

“날도 추운디…, 나오신 김에 선상님도 마사지 한 번 받고 가셔야 쓰겠네요.”

“아, 아니에요. 저는, 뭐….”

“그려. 권 씨가 주물러주면 아픈 곳이 거짓말처럼 싹 나아버린당께. 한 번 받아 봐.”

권 씨의 말에 손사래를 치는 수인에게 올해 일흔을 넘긴 영애 할머니가 거들고 나섰다.

“암만, 권 씨 손이 약손이제. 얼매나 시원스러운디. 날마다 오는 게 아닌께 한 번 받아봐.”

“아니요. 마사지도 받는 사람이나 받지…, 저도 육십이 넘으면 그때 받을게요.”

권 씨와 할머니들의 권유에 수인이 웃으면서 사양했다. 수인은 누군가 자신의 몸을 주무르며 마사지를 한다는 게 내키지 않기도 했지만, 할머니들과 함께 바닥에 누워 마사지를 받는다는 게 영 어색했다. 늘 컴퓨터를 끼고 생활하는 통에 목 뒷덜미와 허리에 통증이 끊일 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들과 함께 바닥에 드러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나온 어르신들은 모두 할머니였다. 할머니들은 순서대로 차례를 지켜 권 씨의 마사지를 받았다. 권 씨는 더듬는 시늉도 없이 마치 보이는 사람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할머니들을 주물렀다.

“흐미, 시원한 거. 참말로 시원스럽네.”

여든을 넘긴 영자 할머니가 첫 번째로 권 씨의 마사지를 받았다.

“할매 뒷덜미가 딱딱하게 굳어버렸소.”

“목 뒷덜미고 어디고 안 아픈 데가 있는가. 온 데가 다 쑤시는구먼.”

“자주 주물러 주고 풀어줘야 하는디. 자슥들한테 좀 주물러 달라고 혀야 쓰것고만요.”

“옆에 사람이 있어야 주물러 달라고 허든가 말든가 헐 것인디, 매 혼자 지내는 디 그럴 수 있는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늙은이한테 자네가 와서 이런 마사지를 해주니 얼매나 감사한 일이여.”

“참말로 자슥들은 다 어디 가고 혼자 이러고 있다요?”

“애들이야 도시로 다 나가부렀제. 도시로 나오라고 혀도 나가 안 간다고 혔구먼.”

“그라지요. 시골 어르신들이 아파트에서 살믄 고것이 바로 감옥살이지 뭐것소.”

“그라제, 고것이 감옥살이제. 나가 고향서 살고 있은께 요롷고롬 할매들허고 마사지도 받고 그라제. 나는 여가 좋구먼.”

“영자 할매요. 어디 가지 말고 우리랑 여기서 재미지게 삽시다. 나이 들면 자식보다 가까운 이웃들이 더 좋은 법이라요. 여기 나오면 누구라도 있응께. 화투도 치고 밥도 먹고 마사지도 받고….”

춘희 할머니가 고랑 깊은 눈주름을 지으며 영자 할머니의 헛헛한 마을을 달래주었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권 씨가 할머니들의 안부를 물었고, 할머니들은 또 저마다의 사연으로 넋두리를 풀어냈다. 수인은 할머니들의 오랜 피로가 풀어지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할머니들이 자식들도 마다하고 고향에 남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권 씨가 마사지해주기로 한 날, 할머니들만 나오는 이유도 더불어 이해가 되었다.

“할아버지들은 마사지 받으러 통 안 나오시나 봐요? 우리 마을만 이런 건가요? 아니면 다른 지역도 그런가요?”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 권 씨를 향해 수인이 물었다.

“할아버지들은 안 나오시는 구만요.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도 마찬가지여요.”

“할아버지들은 원래 마사지를 안 받나요?”

“고런 것은 아니고, 할머니들이 많이 나오시니께, 할아버지들이 안 나오는 거지라. 그냥 그렇게 돼 부럇구먼요. 지역별로 신청을 받아서 다니는데, 할아버지 경로당은 신청을 안 허두만요. 매 할매들뿐이제.”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쑤시고 아픈 곳이 많아서 그런가 보네요.”

“남자들이야 체면 땜시 못 나오는 거여. 그라고 이런 날은 남자들이 양보해줘야 쓰지. 안 그라면 우리가 여기서 편히 엎어져서 이바구 떨 수 있겠는가. 안 그려?”

권 씨와 수인의 대화에 미려 할머니가 끼어들어 말했다. 본래 주름이 별로 없는 데다, 눈썹 문신과 입술에도 미용 시술을 한 할머니는 칠십을 앞둔 나이에도 제법 앳돼 보였다. 시골에선 드물게 외모에 신경 쓰는 할머니였다.

“암요, 암요. 지가 할머니들 기분 좋으라고 노래 한 가락씩 뽑아 드리고 그라잖여.”

“그려요. 어디 권 씨 노래 한 번 들어봅시다.”

할머니들이 연신 웃으며 권 씨를 부추기자 마사지를 하던 손을 멈추고 노래를 시작했다. 권 씨의 구성진 노랫소리와 할머니들의 웃음소리, 박자를 맞추는 손뼉 소리와 추임새가 어우러져 회관은 어느덧 흥으로 데워져 있었다. 수인은 별것 아닌 것들로 흥성거리는 이 공간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회관의 담벼락 안으로 무릎 높이만큼 쌓인 눈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수인은 잠시 걸음 멈추고 마당 한구석에 그림처럼 세워진 권 씨의 자전거를 바라봤다. 겉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자전거는 권 씨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교체 시기를 한참 지나 닳아버린 타이어가 그의 삶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저런 자전거로 이 눈길을 어떻게 왔을까.’

그의 자전거는 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디가 고랑이고 어디가 미끄러운 곳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굴러왔을 권 씨의 모습 같았다. 눈 위에는 자전거 바퀴 자국이 선연히 남아 있었다. 수인은 마을회관 마당을 지나 마을 어귀로 이어지는 권 씨의 자전거 바퀴를 따라 걸어 나오며 불가사의한 생의 힘을 생각했다.

이전 05화Episode 5. 술 익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