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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02. 2024

답보 상태

  유라와 마주 보고 밥을 먹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유라는 이런 침묵이 어색한지 자꾸만 힐끔거린다. 매일 보는 선생인데도 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유라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실없이 말을 걸어 본다. 


  독서수업은 들을 만하니?


  문학 수업보다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이해 안 되는 지문도 많고…….


  씹던 밥을 서둘러 삼킨 유라가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대답한다.


  보충 수업 들어도 어렵니?


  수능 지문 보다가 교과서 보면 좀 나은 것 같은데, 문제집 풀면 마찬가지예요. 독서는 시험 준비도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걱정돼요.


  유라는 문학 시험 잘 봤잖아. 수업 시간에 필기 잘하고 문제집 풀어보면 감 잡힐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식사를 먼저 끝낸 유라가 인사를 하고 나간다. 혼자 남은 너의 옆자리에 상담 선생이 식판을 내려놓는다. 


  식사 빨리 하셨네요.


  상담 선생이 너의 식판을 보며 말한다. 


  오늘 4교시가 비어서 빨리 왔어요. 안 그래도 상담실 한 번 찾아가려고 했는데, 점심 먹고 가도 돼요? 마침 5교시가 비어서…….


  네, 그러세요. 상담예약은 없으니까 이야기 나누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교무실 들렀다가 상담실로 갈게요.


  상담 선생과 약속을 하고 먼저 일어나 나오면서 식당을 둘러본다. 남자 아이들 중에도 혼자 식사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군중 속에 홀로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멀쩡한 아이들도 왠지 밥을 혼자 먹고 있으면 부적응자로 보이는 너의 시선이 싫다. 


  앉으세요.


  상담실로 들어서니 어느새 식사를 마친 상담 선생이 녹차를 우려내고 있다. 본관과는 따로 떨어져 있어서인지 학생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고즈넉한 공간에 녹차 향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온다.


  그래, 어떻게,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괜히 바쁘신데, 시간 빼앗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무엇을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제 아이가 뭔가 힘들어 보이는데, 제대로 도움을 못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몇 학년인데요?


  중 2인데요. 


  어떤 면이 힘들다고 하던가요.


  친구와 관계 맺는 걸 무척 힘들어해요. 저한테 친구들과 다투거나 힘든 일 있으면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어떨 땐 울기도 해요. 원래 자기 생각을 잘 말하던 아이인데, 언제부터인지 학교에서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거죠. 


  학교에서 상담은 해 봤다고 하던가요?


  네, 학교에서 상담 선생님과도 얘기해본 모양인데, 선생님은 그냥 들어주는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긴 합니다만. 


  학교에서 상담받으면 혹시나 말이 세어 나갈까 봐 조심스러운 것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상담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학생에 대한 선입견도 생길 수도 있죠. 그런 게 부담스럽다면 청소년상담센터에 상담신청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학교 밖이라 비밀 보장도 되고.


  상담 선생과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오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진다. 청소년상담센터로 양아를 데려가는 일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답답하다. 그곳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게 가능하긴 한 일인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너 자신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다. 양아의 교우 관계인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성적 문제인지…….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양아가 다니는 학원으로 차를 돌린다. 학원 앞에 주차한 뒤 메시지를 넣는다.


  엄마 지금 학원 앞. 수업 마치면 주차장으로 와라.


  ㅇㅇ


  얼마 뒤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양아가 보인다. 차를 발견한 양아가 보조석으로 들어온다. 양아의 표정을 살핀다.


  수업 잘 들었어?


  몰라.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 학원으로 데리러 오고.


  그냥 학원 마칠 시간도 되고 해서. 오늘 엄마 방과 후 수업 있는 날이잖아. 먹고 싶은 거 있어? 뭐 사갈까?


  음, 치킨.


  넌 무조건 치킨이지. 뿌잉뿌잉 치킨 사 가자.


  오예!


  치킨 하나로 양아가 즐거워한다. 오늘 아침까지 서먹했던 분위기가 한방에 날아간다. 양아가 좋아하는 뿌잉뿌잉 소스를 듬뿍 바른 치킨을 사서 집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 고소한 튀김냄새가 진동한다. 


  치킨 냄새 맡으니까. 배고프다.


  하나 꺼내 먹어. 치킨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지.


  수업 받느라 허기가 졌는지. 치킨 한 조각을 꺼내 먹는다. 이럴 땐 티 없이 밝은 아이로 보인다. 


  양아야, 너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 한 번 받아 볼래?


  청소년상담센터?


  거기 가면 너 힘든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조언도 받을 수 있을 거야. 뭐라도,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


  음, 생각 좀 해 볼게. 


  그래, 생각해 보고 엄마한테 말해줘. 


  양아도 늘 외롭고 늘 예민한 건 아니다. 손쉽게 치킨이나 초코브라우니로 행복한 순간을 맞기도 하고, 가끔이긴 해도 친구 무리들과 점심을 먹고 주말에 약속을 잡고 나가는 날도 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간 무심했었던 인간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과연 타인과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관계란 게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좋았던 관계가 지속될 확률보다 실망하고 멀어질 확률이 더욱 높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너의 마음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양아가 우뚝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바람이 문득 드는 생각일 리 없다. 살면서 체화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너의 생각들을 아이에게 주입해온 건 아닐까 염려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너를 시샘하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너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실력을 보여줘야지. 성적까지 떨어지면 그땐 정말 지는 거야.


  양아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네가 했던 말이다. 너는 정말로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는 게 너무나 속상했다. 


  진정한 복수는 네가 우뚝 서는 거야. 


  절대로 성적만은 떨어지면 안 된다고 양아를 다그쳤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학교에서 해결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돌림은 엄연한 학교 폭력이었지만 학폭위에 신고할 수는 없었다. 신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학폭으로 신고가 들어가는 순간 피해자도 문제아가 되어버리는 건 학교 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임을 알고 있다.


  학폭위가 열려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 보면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백이면 백, 보통은 그렇죠.


  선생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연수에 학교 폭력 분쟁 조정 진행자 과정이란 게 있었다. 강사는 실제 학교 폭력 분쟁 조정 진행을 맡고 있는 인권운동가였다. 인권운동가라는 말에 왠지 신뢰가 갔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은 그의 첫마디에서 기대가 무너졌다.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모두가 문제 있음을 전제로 사안을 들여다 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울한 사람을 한 번 더 억울하게 만드는 말처럼 들렸다. 


  분쟁 조정이란 게 별로 의미는 없습니다. 문제는 학생들 간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거죠. 사과라는 것도 판사 앞에서 하는 형식적인 사과에 불과합니다. 판사 앞이니까 사과하는 겁니다.


  인권운동가는 자신이 분쟁 조정 진행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런 과정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학폭위란 게 결국 어른들이 아이들 관계에 개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들이 어떻게 화해라는 걸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은 아이들이 지들 끼리 싸우다가 경찰서에 신고합니다. 학교로 경찰들이 오고 가고 부모들이 만나서 또 싸우는데 관계 회복이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종이 한 장으로 정리된 조정 절차와 진행 맨트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런 말 할 거면 이런 수업을 왜 듣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진행하는 사람의 생각도 답보적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문제는 속시원히 해결되기 보다 늘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땐 누구라도 그저 좋은 선생일 수 있다. 수업 열심히 가르치고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해도 팔할은 좋은 선생이 된다. 직업으로서의 선생과 소명 의식을 가진 선생의 차이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너는 그간 겪어온 양아의 담임 선생들을 믿지 못했다. 선생도 믿지 못하는데 센터의 상담사는 믿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아를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무엇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양아의 성적이 더 떨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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