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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8. 2024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양아의 방문이 열리지 않은 채로 맞이하는 아침이다. 어제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양아의 방문을 두드린다.

 

  아침 먹어야지…….


  빨리 일어나서 머리 감고 씻어라는 말까지 하려다가 그냥 돌아선다. 대신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남편을 부르며 부산하게 아침을 알린다.


  여보, 밥 준비 다 됐어. 얼른 먹으러 와!


  음, 곧 갈게.


  화장실 안에서 남편이 대답한다. 남편이 식탁으로 와서 앉았을 때, 양아가 까치 머리를 하고 나온다. 


  일어났니. 어서 와서 밥 먹어라.


  남편의 말에 양아는 아무런 대답 없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샤워기 트는 소리가 들리고 약 10분 뒤 머리를 닦으며 거실로 나온다. 


  어서 와서 밥 먹어. 국 다 식었다. 


  너는 자꾸만 양아의 눈치를 살핀다.


  머리 말리고 먹을게.


  엄마가 말려 줄까? 너보다 엄마가 빨리 말릴 텐데…….


  사실 아침마다 양아의 머리까지 대신 감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는 머리카락 겉에만 물을 묻혀서 샴프를 끝낸다. 시원하게 두피까지 씻겨 주면 속이 다 후련할 것 같다. 머리 말리는 것도 물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옷깃이나 어깨 위로 물이 떨어지는 데도 양아는 다 말린 거라고 한다. 아이가 어설프게 뭔가 하는 걸 지켜본다는 게 쉽지 않다. 너의 성질이 이렇게나 급하다는 걸 양아를 키우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냐, 내가 할게.


  남편과 식사가 끝나갈 때 양아가 식탁에 앉는다. 밥은 먹는 시늉만 하다가 일어선다. 웃옷을 입고 나오는 양아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기다려! 오늘은 아빠 차로 가자.


  양아가 가방을 챙겨 마당으로 나가는 걸 보던 남편이 고개를 돌린다.


  애 다 컸는데, 자꾸 머리 쥐어 박고 그러지 마.


  뭐…….


  이젠 변명하는 것도 지겨워 다음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릴 때 남편이 다시 입을 연다.


  요즘엔 아무리 부모라도 애들 때리고 그러면 큰일 나. 알만한 사람이…….


  참, 때리기는 무슨. 그냥 머리 한 대 쥐어박은 거 가지고…….


  아무튼, 애 몸에 손대는 일 없도록 해. 얼른 출근해야겠다. 


  양아를 태운 남편 차가 마당을 미끄러지듯 나가고, 너도 차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분명 아이 머리를 쥐어박은 일은 잘못한 게 맞다. 그런데 너는 뭔가 억울한 마음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구차한 변명이란 걸 알고 있다. 학교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아메리카노를 내려 자리에 앉는다. 옆에 앉은 윤리 선생이 말을 건다.


  쌤, 커피 냄새 좋네요. 커피 내려놓은 거 있어요?


  네, 한 명 정도 마실 건 남아 있어요. 


  에고, 빨리 가져와야겠네. 


  윤리 선생이 원두커피를 가져온다.


  고마워요, 쌤.


  별말씀을……. 근데 쌤 아들이 몇 살이라고 했죠?


  큰아들이 고 1이고 둘째가 중3인데, 왜요?


  그냥……. 쌤 댁은 어떤가 해서…….


  쌤, 우리 큰아들 공부 손 놓은 지 오래됐어요.


  왜요?


  공부 문제로 아빠랑은 말도 안 해요. 말도 마세요. 오죽하면 둘째가 형 당근 마켓에 팔아버리자고 그런다니까요. 하도 말썽을 피우니까. 쌤 애는 공부 좀 한다고 안 했나요? 


  공부보다 요즘 부쩍 예민해서……. 여자애라서 그런가.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남자애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공부만 못하면 제가 이런 말 안 하죠. 남자애들은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요. 진짜 아들 키우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니까요. 이젠 웬만해선 눈도 끔쩍 안 해요. 


  경찰서라니! 정말 아찔했겠네요. 우리 애는 사춘기라 예민한 것도 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 관계로 힘들어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쩍 힘들어했는데 중학교 와서도 그러네요. 지켜보고는 있는데, 늘 걱정이죠.


  여자애들이 교우 관계로 많이 힘들어 하죠. 여자애들이 특히 그래요. 


  눈치 보는 걸 엄청 싫어해요. 적당히 분위기 봐서 무리에 끼는 거, 그런 걸 엄청 싫어해요.


  요즘 여자애들은 무리가 없으면 안 되는데. 혼자 있으면 좀 위험하기도 하고. 안 좋은 애들이 붙을 수 있거든요. 잘 지켜보셔야 해요. 유라 보세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미주랑 1학년까지 잘 지내다가 작년에 싸우고 나서는 지금까지 친구 관계가 불안정하잖아요. 사실 미주는 좋은 친구가 아니라서 같이 다녀도 문제예요.


  그러고 보니 유라는 늘 혼자 다녔고 밥도 혼자 먹을 때가 많았다. 미주는 무리에 끼어 있긴 했지만 겨우 붙어 다니는 정도라는 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양아가 부쩍 예민한 데는 학교생활과도 연관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은솔과 다른 반이 되면서 친구 관계가 원만해지긴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같은 반에서 만나는 바람에 양아의 학교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 동네도 아닌데 행정 구역이 같은 이유로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배정된 것이다. 2학년이 되어서는 다행히 다른 반으로 배치되었다. 이것도 담임에게 미리 부탁해서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양아의 학교 생활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한 번 꼬여버린 학교 생활은 어른들이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았다. 

  맞은 편에 앉은 수학 선생도, 옆자리의 윤리 선생, 건너 자리의 생명공학 선생도 자식 문제를 토로하곤 했다. 어쩌다가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낄 사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생명 쌤 아들이 드럼 배워요?


  얼마 전 점심 시간에 함께 차를 마시면서 수학 선생이 말을 꺼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쌤 카톡에 프사 바뀌셨길래……. 


  아 네, 안 그래도 드럼 계속한다고 해서 난감해요.


  드럼이 뭐가 난감해요?


  애가 6학년이잖아요. 중학교 준비해야 하는데 계속한다고 하니까. 이것 때문에 고민이에요. 요즘 6학년 때 중등학교 과정 다 떼고 들어가니까요. 수학 쌤이 더 잘 아시잖아요. 선행 학습 중요한 거.


  그렇죠. 미리 선행하고 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고생을 덜 하죠. 


  그러니까요. 같은 아파트에 친구들이 있는데, 영수 진도가 꽤 많이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소리 듣기 전에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우리 애만 뒤처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애는 드럼이 좋다고 계속 다니게 해달라고 그러고…….


  남편은 뭐라고 그래요?


  남편은 애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라고 그러죠. 우리 집에서 저만 이상한 사람 됐어요. 친정 엄마도 나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 그러면서 다들 절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요즘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다 보니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많아지는 거죠. 아이가 좋아하면 그쪽으로 키워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때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공부밖에 몰랐던 거고…….


  윤리 선생이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주변에서도 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진짜 시대가 변했는데 내가 너무 보수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일 안 변하는 게 선생이잖아요. 교육 방식도 그렇고. 공부 못 하면 세상 끝날 것처럼 자기 자식들 교육은 또 지독하게 시키잖아요.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처럼 저도 내 자식 공부는 억지로 안 되더라고요.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그냥 자녀가 하고 싶은 거 하도록 뒷바라지 해야 해요. 저도 처음엔 우리 자식이 천재인 줄 알고 엄청 시켰습니다. 


  수학 선생이 말했다. 


  수학 쌤 아들은 성인 아니에요? 지금 뭐하고 있어요.


  그 녀석은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지금 바리스타하고 있습니다. 


  쌤은 믹스 커피만 마시잖아요.


  윤리 선생이 말했다. 


  아들이 바리스타면 뭐합니까. 제 입맛이 다방 커피인데…….


  점심 시간의 티타임은 자녀들 얘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그들도 너처럼 반쪽 영혼은 자녀에게 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본인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고, 자녀가 어릴 때는 자기 자식이 모두 천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윤리 선생과 아침부터 한바탕 자식 문제로 설을 풀었더니,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복감이 느껴진다. 오전 수업이 허기진 상태로 지나간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유라가 눈으로 들어온다. 너는 식판을 들고 유라와 마주 앉는다. 유라가 수줍게 고개 숙여 네게 인사를 건넨다.


  음, 그래. 밥 많이 먹어라.


  유라는 너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선한 눈웃음을 짓는다. 양아도 학교에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유라처럼 혼자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양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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