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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6. 2024

별 것 아닌 일

  말다툼은 터무니없는 것으로부터 촉발된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아이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양아가 눈치채기 전에 얼른 다른 채널로 돌려 버린다. 언제 봤는지 양아가 리모컨을 가로채 다시 채널을 돌려놓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도깨비 봐야 한다고. 리모컨 이리 내놔.     


  난 이거 볼 거야.

    

  참나! 이런 거 순 설정이야. 순진하긴…….     


  언제부턴가 아동 심리전문가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부쩍 많아졌다. 처음엔 정말 아이의 문제행동이 상담으로 교정되는 게 신기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시청했다. 부모라면 한 번쯤 볼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내용들이 고스란히 방영되는 게 불편했다. 아동 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꽤 높았는지 한동안 유사 방송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붐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불편함을 느끼고부터는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되더라도 얼른 지나쳐버리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TV도 잘 보지 않는 양아가 유독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졌다.

  양아에게 리모컨을 빼앗기는 바람에 멈춘 곳에서, 아이가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질러대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를 때린다. 다시 비명. 엄마를 향한 폭력이 계속된다.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부모들은 하나 같이 죄인처럼 앉아 소리 죽여 울고 있다.    

  

  정말 눈 뜨고 못 보겠네. 저런 애를 자식이라고…….     


  너도 모르게 탄식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애가 저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부모가 뭔가를 잘못해서 애가 저런 거라고.     


  양아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문제의 아이를 대변한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채 TV만 바라보며 말을 툭툭 내뱉는다. 녹화된 영상을 지켜본 상담사가 처방을 제시한다. 이어 개선된 모습의 아이가 다음 편에 예고되고, 광고가 흘러나온다. 너는 양아에게서 리모컨을 가져와 채널을 돌려 버린다.      


  저런 건 방송으로 내보낼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상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커서 저걸 보게 될 텐데……. 그때 부모 원망하면 어쩌려고 저럴까.     


  상담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고칠 수 있으니까 나왔겠지.      


  양아가 저돌적인 자세를 취한다.      


  저런 식으로 잠깐 상담받는다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란다. 저런 프로그램은 시청률 높이려고 자극적인 장면 찾아서 내보내는 거야. 아이에겐 너무나 잔인한 일이지.     


  아이가 크면 얼굴이 달라져서 사람들은 모를 텐데 뭐.    

 

  이웃이 알고, 학교 친구들, 친척들이 알 텐데……, 부모도 그렇지. 아픈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지 방송으로 내보내면 어떻게 하니.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니까 나왔겠지. 방송에 보면 아이들이 좋아지잖아.     


  그게 바로 편집의 속임수인 거야. 이 바보야! 방송에서 의도한 장면만 카메라에 담아서 내보내는 거라고…….     


  양아는 잠시 주춤하다가 할 말이 떠오른 듯 강경하게 맞선다.     


  적어도 저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모들은 자신을 반성하기라도 하지. 엄마는 반성 같은 거 안 하잖아.     


  내가 왜 반성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물어! 엄마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잔소리야. 맨날 나한테 뭐라고 하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러면서……. 그게 다 가스라이팅이라고!     


  가스라이팅? 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그럼 알지 자기보다 힘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한테 세뇌시키는 거!  

   

  참 나, 어디서 떠도는 소릴 들어가지고 아무 데나 갖다 붙이고 있어. 자기 할 일 스스로 잘하면 잔소리할 일도 없지. 그리고 잔소리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니? 어이구!   

  

  양아는 애초에 너와 말싸움 상대가 되지 못한다. 티브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끌어모아 잡다하게 늘어놓은 게 다이지 않은가. 가당치도 않은 근거로 대드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너는 말끝에 버릇처럼 오른손으로 양아의 머리를 쥐어박으려고 한다. 양아의 왼손이 반사적으로 네 손을 가로챈다.      


  어쭈! 요것 봐라.     


  너와 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버티고 있는 양아를 아주 하찮은 존재를 보듯 바라본다. 눈에 힘을 잔뜩 준 양아가 너를 응시한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학생들이 말하는 너의 조용한 카리스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너는 있는 힘껏 양아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 나게 머리 한 대를 갈긴다.    

 

  뻑!     


  감정이 실린 손은 힘 조절을 하지 못한 채로 아이의 머리를 가격한다. 주먹이 욱신거린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아이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또르륵. 방바닥으로 아이의 눈물이 떨어진다. 양아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한동안 너를 응시하다가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고 사라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별것이 되어버린 상황이 자꾸만 반복된다. 이게 아닌데 싶은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덩그러니 혼자다. 양아가 박차고 나간 방바닥에 아이의 눈물이 남아 있다.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 속에 너의 눈만 깜박인다.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가 양아의 방문을 열어 본다. 노크 안 하면 벌금 만 원! 문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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