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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1. 2024

너는 누구인가


  너의 머릿속은 온통 양아로 가득 차 있다. 상념에 잡히는 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출근길이나 퇴근길, 습관적으로 켜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디제이의 말과 노랫말이 모두 무의미한 철자처럼 흘러갈 뿐이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도, 학생들이 네게 말을 걸 때조차 지금 이곳에 온전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지독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처럼 반쪽 영혼이 없는 채로 어떤 시간 속에 갇힌 듯하다.    

  

  너희들은 중2 때 어땠니?     


  독서수업 중 판서를 하다가 문득, 아이들을 향해 말을 건넸다. 교탁 바로 앞에서 졸고 있던 수빈이 눈을 번쩍 떴다.


  중2는 건드리면 안 돼요. 그땐 진짜 가만히 있어도 힘들거든요. 


  너희도 부모님께 대들고 그랬니?


  왜요? 쌤 딸이 그래요?


  수빈이 뒤에 앉은 현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울 딸 보면서 격세지감을 엄청 느끼고 있는 중. 말로는 못 당할 지경이지. 요즘 애들이 이 정도구나 실감하면서…….


  국어쌤 딸이니까 말을 잘하는 거죠. 보통은 흥분부터 하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욕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히힛.


  어느새 잠이 완전히 달아난 수빈이가 현수 말을 가로챘다.


  부모 앞에서 욕하고 그래?


  너무 흥분하면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그러잖아요. 그땐, 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튀어나와요. 평소에 애들이랑 맨날 욕하면서 노니까. 그냥 무의식중에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얻어터지기도 하고. 헤헤.


  보통 무슨 일로 싸워?


  주로 성적 때문이죠. 게임 하다가 걸리면 그때도 혼나고……. 뭐!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요, 쌤. 공부도 하기 싫고 그냥 다 짜증 나고 힘들고 그래요.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현수가 말했다. 현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이다. 기숙사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던 적이 있다. 현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집보다 기숙사가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집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현수의 선한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지나갔다. 집이 멀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가정을 피해 기숙사로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다. 현수는 후자에 속했다.      


  집에서는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현수의 가정은 어떤 결핍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경제적 결핍인지 정서적 결핍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숙사보다 편하지 못한 가정이란 건 분명해 보였다. 겉모습만으로는 어떤 결핍도 느낄 수 없을 만큼 현수는 착실한 학생이다.     


  쌤도 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니까 이상하네요. 딸이랑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은데요. 막 화내고 윽박지르는 스타일 아니잖아요. 조용한데, 카리스마 있고…….     


  너의 수업이라면 방과 후 수업까지 모두 챙겨 듣고 있는 서현이가 말했다.     

 

  카리스마는 무슨…….   

  

  양아에 대한 고민이 가득 차올라 수업 중 뜬금없는 소리를 해도 아이들은 싫은 내색이 없었다. 오히려 수업이 잠시 중단되는 것을 기뻐하며 수업보다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 답답하면 아이들 앞에서 이런 소릴 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너는 왜 그토록 양아에게 엄격할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하듯 양아를 대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았다.    

  

  양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의 그 엄격한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주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부터, 아니 유치원 시기, 아니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두뇌 발달과 관련된 학습을 시켰다. 밸트형 포대기로 캥거루처럼 아기를 앞쪽으로 안은 엄마들이 아기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위해 문화센터로 모여들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저귀를 찬 아기들이 엄마의 품에 안겨 수업을 들었다. 강사는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며 각종 교보재를 흔들며 두뇌 자극에 좋다는 수업을 해주었다. 한 시간 내내 엄마 품에 안겨 수업을 듣는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가능했다. 물론 게 중에는 엄마 품을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거나, 기어 다니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들도 있었다. 아기를 제어하는 데 실패한 엄마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양아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강사의 움직임과 소리, 각종 자극제에 남다른 집중력을 보였다.      


  차라리 그때 양아가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더라면 너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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