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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19. 2024

요즘 아이들


  노크 안 하면 벌금 만 원!     


  양아의 방문 앞에 신경질적으로 갈겨쓴 경고문이 붙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부터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상 아래로 때처럼 까맣게 밀려 나온 지우개 똥이 먼저 밟힌다. 널브러진 양말 뭉치 서너 개도 보인다. 뒤집은 상태로 던져진 외짝 양말이 손이 닿지 않는 침대 구석에서 먼지를 둘러쓴 채 발견될 때도 있다. 고작 지우개 똥이나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은 양말을 치우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게 엄마인가. 문제는 반복에 있다. 한 장면을 캡처해서 붙이기를 한 것처럼 양아의 방은 늘 같은 모습이다. 마치 잘 보존된 사건의 현장처럼.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내다본다. 아이가 없는 방 안에서 바라보는 여름 밤하늘에 별들이 유독 맑게 빛난다. 양아가 집을 뛰쳐나갔을 땐 주위가 훤했다.


  엄만 왜 맨날 짜증부터 내고 그래!


  맨날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니까 그렇지.


  하려고 했단 말이야.


  엄마가 말하기 전에 하면 어디가 덧나니?


  양아가 집을 뛰쳐나갔다. 말다툼이란 걸 시작하고부터 계속. 말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갔다. 뛰쳐나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들어오는 시간도 늦어졌다. 기척도 없이 들어와 고이 잠든 아이를 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짜증과 화가 사라졌다.


  저도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겠지. 그래, 그러면 된 거야.


  사춘기 자녀와 부모와의 말싸움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의 아이들도 질풍노도의 시간을 거쳐 인간이 되었다. 너보다 육아를 먼저 시작한 친구도 아이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했다.


  넌 애랑 이야기라도 하지. 난 우리 애들이랑 대화 자체가 안돼.


  아이들 키우는 문제로 육아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면 그들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제때 비우지 못한 쓰레기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날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아이들 사춘기가 시작되면 방문부터 잠그기 시작해. 양아는 늦은 거지. 요즘은 초등 4학년만 돼도 애들이 자기 공간을 철저하게 사수한다니까.


  문을 잠가 버려?


  그래. ‘노크 안 하면 벌금 만 원!’이라니, 귀엽다 귀여워.


  양아의 반항은 친구 눈엔 귀여운 수준이었다. 경고문을 방문 앞에 내걸긴 했지만 아직 방문을 잠그지는 않았다는 게 신호라고 했다.


  너는 왜 양아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해. 시기가 다를 뿐이지 사춘기는 다 있어.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건 아직 열려있다는 신호야. 백이면 백 사춘기 시작되면 방문부터 잠근다 너.


  아이가 뛰쳐나가면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감정이 부딪치는 순간, 너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양아도 자신의 음성을 듣지 못하듯.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말들이 허공에서 마찰 소리를 냈다. 싸움의 끝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이었다. 갑자기 생긴 고요 속에서 방금 했던 말들과 볼 수 없는 너의 표정을 떠올리는 일만큼 허탈한 게 있을까.



   아이가 저토록 까칠해진 데는 다분히 학교의 영향이 있어 보였다. 학교는 육식동물들이 우글대는 야생 숲과 같았다. 교활한 여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순둥이 양아! 아이는 둥근달처럼 환하기만 했다. 모난 구석 하나 없이 순하기만 한 아이는 어디에 내놓기에도 아까웠다.

  양아가 학교 생활을 부쩍 힘겨워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다. 힘겨움의 원인은 같은 학년의 여자아이들이었다.      


  엄마, 여자애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왜? 애들이 어떤데?     


  내가 민지랑 같이 가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은솔이 다가오더니 민지만 데려가는 거야.     


  너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응, 나한테는 완전히 생까고…….      


  그럼 민지는 너랑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거야?     


  걔도 그냥 가버렸어.     


  왜 그러는 건지 물어는 봤어?     


  아니……, 그런 걸 어떻게 물어봐. 그냥 있었지.     


  둘이 가고 있는데 굳이 한 명만 데리고 가는 애도 그렇지만, 멀쩡히 가다가 한 친구가 가잔다고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애도 이상하구나!      


  양아는 같은 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기를 힘들어했다. 어쩌다 친구가 생겨도 꼭 방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양아는 자주 혼자 남겨지는 모양이었다. 혼자 남겨지는 원인이 양아에게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학교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어머님, 양아는 문제가 없습니다. 은솔이는 모든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아이인 걸요.    

  

  담임은 망설임 없이 양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양아 입에서 거론되는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담임선생이 지목한 문제적 인물이었다. 문제적 인물이야 같은 반에 있기 마련이지만 유독 양아를 따돌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이 많은 모양이더라고요.     


  아마, 다른 애들은 은솔이 두려워서 하자는 대로 다 해주니까 끼워주는 거고, 양아는 그러지 않으니까 따돌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양아는 또래에 비해서 자기 생각이 분명한 편이죠. 눈치도 덜 보는 편이고요. 억지로 편을 만들거나 무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애들이 그렇게 무리 지어 다니나요?     


  여자애들이 그렇습니다. 남자애들은 별로 그런 게 없는데, 여자애들은 한 번 무리 지으면 고정이 돼서 그게 일 년을 가더라고요. 문제 이긴 합니다. 가면 갈수록 더 하더라고요. 삼삼 오오가 없습니다. 두 무리로 딱 나뉘거나 어떤 학년은 한 무리로 똘똘 뭉치기도 하거든요.     


  그럼 무리에 끼지 못한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친구도 없이 지내나요?     


  학년마다 피해를 보는 애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그때뿐이고 소용이 없더라고요. 무리라는 게 초반에 대부분 형성이 되다 보니, 학기 초에 애들이 어떻게 해서든 소외되지 않으려고 눈치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애들도 무리에 끼려고 엄청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합니다. 그것도 문제죠. 그래도 어머님 양아가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소외되지 않도록 눈여겨보겠습니다.     

 

  담임은 우선 너를 안심시켰지만, 말 그대로 눈여겨보는 것에 그쳤다. 결국 학교에서의 문제는 고스란히 양아의 몫으로 남겨졌다.     

  양아는 뭔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고집이나 욕심이 없는 모습 때문에 특히 어른들이 좋아했다. 문제는 또래들의 관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자기만의 몰입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일테면 비 개인 운동장 웅덩이에 버둥대는 벌을 발견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나뭇가지로 벌을 건져냈다. 그러는 동안 함께 걷던 친구는 이미 딴 곳으로 가고 없었다. 그런 것이 정서의 차이인지 관심사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차이도 또래 관계에서 중요한 건 분명해 보였다.

  학교에서 혼자 남겨진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체로 뭔가를 해야 하는 모든 활동에서 제외되는 일이었다. 조별 학습이나 체육 활동, 하다못해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도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는 건 학교 생활 전반을 무력화시키는 암세포 같았다.   

  

  엄마, 아이들이 내 책가방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어.     


  어깨가 한껏 처진 양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했다.     


  누가 그런 건데!     


  몰라, 체육 시간 마치고 들어오니까. 그렇게 돼 있었어. 그뿐만이 아니야. 수업 시간에 새집 만들기 한 것 전시해 뒀는데, 그것도 망가뜨려 놨어.   

  

  실수로 망가진 건 아니고?     


  내 것만 그랬단 말이야. 체육 시간에도 애들이 나한테만 뭐라고 그런단 말이야.    

 

  체육 시간에 그럴 게 뭐가 있어.     


  피구 같이 편 먹고 할 때, 애들이 나만 공격하거나 내가 던진 공 맞고 죽으면 욕하고 째려보고 그래! 다른 애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나한테만 그런다니까.      


  선생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몰라 선생님은 딴 데 가버리고, 관심도 없어. 맨날 애들 시합 부쳐놓고 옆에 없단 말이야.      


  담임은 체육 시간에 아이들은 자주 방치했다. 말은 자율성을 기른다는 명목이었지만 선생으로서 엄연히 의무를 방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아는 혼자서 버텨보다가 참기 힘들 만큼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한꺼번에 힘겨운 점들을 쏟아냈다.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양아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미웠지만, 학교 선생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사 사회의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기에 시시콜콜 선생에게 전화하기도 힘들었다. 너 또한 중등교사였으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교사라는 이유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양아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위해 좀 더 감정을 담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차라리 남자애들처럼 한 판 제대로 붙었으면 좋겠어. 나보다 덩치도 작은 것들이 비겁한 방식으로 사람 괴롭히고 정말 짜증 나!     


  양아 보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 양아 키의 반만 한 아이들이었다. 어쩌다 학교를 방문할 때면 작고 앙칼지게 생긴 여자아이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때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양아가 두려워할 상대는 아니었다. 그냥 보면 보통의 작은 여학생에 불과했다. 요즘 아이들의 힘은 무리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학교 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리에 잘 휩쓸려 다녀야 했다. 부족할 게 없는 아이들이 자기보다 잘난 게 없는 아이들에게 휘둘렸다. 그만큼 무리 속에 혼자 남겨진다는 공포가 아이들을 지배했다.

  학교란 곳은 예나 지금이나 서열화가 고착된 곳이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는 무리에 예속되려고 했고, 누군가 따돌림을 당하면 자신도 함께 따돌림을 당할까 봐 함께 있기를 꺼렸다. 옛날과 다른 게 있다면 서열화의 기준이 성적순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똥이라고 생각해! 똥 밟으면 너만 불쾌한 거야.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괴롭힌다면 반응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절대로 맞서 싸우면 안 돼. 같이 싸우면 너도 할 말이 없어지는 거야.     


   고작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었다. 그런 조언이 얼마나 잘못된 조언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너의 조언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는 동안 양아의 학교 생활은 점점 더 힘겨워질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네가 해줄 수 있는 충고의 말이 고갈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를 빼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심리 도서를 읽는 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초등 5학년인 아이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아이는 또 그 책을 충실히 읽고 정말 아이들로부터 미움받을 용기를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로 가면 미움받을 용기는커녕 늘 상처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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