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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Nov 14. 2022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과의 말

초보 수행자의 작은 깨달음


어떤 싸움이든 손뼉이 마주쳐야 성립이 된다. 일방과실은 사과와 배상뿐이다. 쌍방과실(과실의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인 경우에는 설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상대의 잘못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싸움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되기도 하지만, 싸움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만, 먼저 사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싸움을 걸 용기는 있어도, 먼저 사과할 용기는 내기가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아직 그 단계까지 진화하지 못했다.



특히, 부부싸움은 99%가 쌍방과실형 싸움이다. 그렇다 보니 부부싸움에서 사과의 말이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로의 주장을 시소 양쪽에 올려놓으면 완벽하게 수평을 유지한다.


원인이 불분명하고 서로의 입장과 주장이 워낙 팽팽하여 평생을 싸워도 시비를 가리기 힘들 지경이다. 싸우다 보면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아이의 교육 문제는 어느새 서로의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


싸움이 멈추는 경우는 어느 한쪽이 체력이 달려 지치거나 할 말을 잃고(주로 남자 쪽) 코너에 몰릴 때다. 아니면 효심이 지극한(?) 아이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갑자기 중단된다. 평소 책과 거리가 먼 아이는 방문을 열고 소리친다 "아 정말, 시끄러워 책을 볼 수가 없네!"


그렇게 중단된 싸움 뒤에는 긴 침묵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답답한 쪽이 먼저 슬쩍 아주 짧은 말을 던지고, 못 이긴 척 비슷하게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중단되었던 싸움을 다시 시작하려니 이길 자신도 없고, 무슨 일로 싸웠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모든 싸움이 이렇게 시작되고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됐냐? 속이 시원해?"

이 말을 사과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길고 거친 싸움이 시작된다.


이거보다 훨씬 나은 버전도 있다.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화 풀어", 이 정도면 용기와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줘야 한다.


버전이 하나 더 남아있다. 효과가 검증된 확실한 사과의 멘트다.

"여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눈치챘겠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장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세 단어다. 이 문장이 빠지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밋밋한 사과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봤다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있는지, 이 한 마디에 진정성 있는 사죄의 마음이 절절이 묻어난다. 이 완벽하고 솔직한 사과의 말을 받아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목소리 톤은 조금 낮추고,

"여보.."라고 부를 때만 배우자의 눈을 한번 지긋이 쳐다보고, 그다음 말에는 시선을 살짝 아래쪽을 향해야 한다. 다른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다만, 예기지 못한 불상사에 대비해 몇 마디는 추가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배우자가 "그래? 뭘 잘못했는지 어디 말해 봐"라고 했는데, 머뭇거리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 사과의 기술은 진심이면 가장 좋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부부싸움은 어차피 원인이 불명확하고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용기와 연기력이 가정의 화목을 지켜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말을 수 십 번, 수 백번 연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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