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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Nov 06. 2022

'그냥'과 다시 친해지자

초보 수행자의 작은 깨달음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이 지속되던 모임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친목 모임들은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같다.


그냥 술이 좋아서 어울렸던 사람들, 그냥 아무 얘기나 잘 통하던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냥'이 우리 곁에서 점점 멀리 떠나는 것 같아 허전하고 서운한 기분이 든다.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그냥' 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속마음을 살짝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빠져나갈 여지도 조금 남겨둔다. 처음부터 의도가 너무 명확해지면 불편한 감정선을 서로 조절하기가 난감해질 때가 많다. '그냥'은 두 마음 사이의 간극을 메울 듯 말 듯 간을 보기도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나 이기심으로 출발한 마음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는 역할도 한다.     


그냥이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친구와, 동료와 술 한잔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유는 마시면서 찾으면 된다.

평일에 휴가를 내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는데 굳이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어쩐 일이냐? 주중에", "그냥요".

감사, 위로, 안부, 격려 등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는 그냥이라는  한마디가 더 많은,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할지도 모른다.


또한, 힘들고 지칠 때나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보다는 그냥 해버리면 오히려 쉬워진다. 그냥 하다 보면 문제가 풀리고 답이 보이기 시작할 때도 있다.

머리로 하는 거창한 결심이나 각오보다는 때로는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효과적이다. 새벽 기도를 위해 일찍 일어나기 힘든 사람들에게 법륜 스님은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냥 일어나면 됩니다"




전에는 누가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뭔가 숨기는 것 같고 성의 없어 보였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봤다. 최근 많이 지쳐 보이는 팀원에게 커피 한잔을 쓰윽 건넸다. 평소 안 하던 나의 행동에 놀란 팀원은

'어? 팀장님, 갑자기 웬 커피를..?",

"아니, 그냥", 

힘내라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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