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일부, 그 완벽한 중립의 상태

승리를 위한 기술

by 시원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스윙을 한다. 골프는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하는 행위다. 몸에 힘이 얼마나 빠졌는지, 마음을 얼마나 비웠는지.

- 골프를 계속할 이유를 찾은 나의 생각 -


필드의 상태는 기후 변화와 시간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신중하되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예측에 따라 판단하고 근육의 습관에 따라 행동한다. 결과는 자연환경에 맡길 뿐이다.


라운딩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한다. 안개에 갇혀 블라인드 샷을 할 때도 있고, 라운딩 도중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기도 한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코스를 돌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특별히 변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울퉁불퉁하여 걷기 힘든 길이 자연인데, 내가 쉽고 편한 길만을 찾다 보니 변수처럼 여겨질 뿐이다. 18홀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샷들만 선택하고, 나머지 샷들을 버린다면 골프의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자연이 유독 나만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최종 스코어를 보면 실력인지 아니면 정말 자연의 미움을 받은 건지 바로 알 수 있다.


동반자들이 샷을 할 때는 잠잠하던 바람이 내가 티박스에 올라가면 갑자기 강풍으로 돌변한다. 어쩌다가 한번 기가 막히게 잘 맞은 드라이브 샷은 평균 비거리보다 몇십 미터 더 날아간다. 하필이면 거기에 벙커가 있다. 심지어 캐디마저 유독 나만 푸대접하는 것 같다.


'동반자 앞에 서 있는 나무는 공기지만, 내 앞에 서 있는 나무는 진짜 나무다', 자연의 변수를 인정하지 못하면 이 문구는 귀신처럼 달라붙어 18홀 내내 졸졸 따라다닌다. 공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면서 순응하겠다고 몇 번을 반복해서 다짐해 보지만, 공 앞에 어드레스 하는 순간 욕심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면 자연과 싸워볼 만한지(큰 성공), 자연에 순응해야 되는지(작은 성공) 고심을 하다가 기어이 싸움을 걸고 결국 실수를 저지른다. 순응한 자들의 작은 성공을 보며 실수의 원인이 공평하지 않은 자연환경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자연(이 세상)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완벽한 중립의 상태임을 깨달아야 한다.




라운딩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평생 친한 지인들하고만 어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즈니스 파트너, 직장 상사, 부부 동반, 지인의 지인.. 불편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많던가. 심지어 골프의 규칙과 매너에 서툴거나 대놓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라운딩을 같이 할지 말지는 순전히 나한테 달려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들 동반자들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드 곳곳에 있는 OB 말뚝이나 워터 해저드는 나에게만 특별히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맞바람이 불 때는 긴 클럽을 선택하고, 뒷바람이 불어 줄 때는 한 클럽 짧게 잡는다. 해저드에 공이 빠지면 스코어를 더 잃지 않으려고 다음 샷에 집중한다. 바람이 심한 홀에서는 파 욕심을 버리고 보기를 목표로 끊어서 가야겠다.


이제는 한낮에도 제법 찬기운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괴로워할 이유는 없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며 화를 내지 않고,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추위를 굳이 즐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계절의 변화만 자연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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