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질문이다. 어쩌면 나 보다 가족들이,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하면서 내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상대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표정과 몸동작까지 파악하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을 때 조차도 상대는 그런 나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까지도 친구들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나 일지도 모른다.
오랜 과거의 습관과 관성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모습이 나의 실체일 수도 있고, 세상의 풍파를 견디느라 오랫동안 쓰고 있는 가면 속에 가려져 있는 내면의 작은 욕망이 나의 실체일 수 있다.
얼마 전 사람들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짧게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망설였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
한편으로,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가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또한, 사람들앞에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선포함으로써 나 자신에 대한 약속과 다짐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평소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얘기하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깨우침은 덤으로 얻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유머는 내가 세상을 보는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 유머는 내 삶의 활력소이자 내가 세상을 덜 심각하게, 조금 더 여유 있게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해 준다. 유머는 다양한 관점, 새로운 생각으로 나를 이끌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해주는 매개체다. 유머 코드가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은 유쾌하고 유익하다.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의 흐름을 기분 좋게 바꿔버리는 반전의 매력과 불리한 입장을 순식간에 역전시키는 짜릿함에 매료된다. 유머리스트 중에 까칠하거나 고집불통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들은 항상 긍정적이어서 희로애락의 감정 기복이 거의 없다. 나의 유머에 웃어주는 사람들(특히, 가족들과 동료들) 덕분에 나도 웃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오랫동안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나의 참모습을 찾아가고있는 것 같다. 회사 보고서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가 이런저런 소재로 글을 쓰게 되다니.. 뿌듯하고 대견하다. 닥치는 대로 마구 쓰고 있지만 글을 쓰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성취감과 자존감이 높아지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는 듯한 재미와 셀렘을 만끽한다. 가족들은 남편과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본다.
아직은 소재가 제한적이고 문장이 빈약하지만, 앞으로 글로써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지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부푼 꿈과 야무진 목표를 가져본다.
나는 수행하는사람이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수행을 시작한 지 이제 3년 조금 넘었지만, 내 인생을 수행 전과 후로 나눌 만큼 수행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내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괴롭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착각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가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괴로워할 이유가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고, 괴로움이 유발될 인연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이고 통찰이다. 수행을 통해 편안하고 자유로워진 마음이글을 쓰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