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지대에 머물고 싶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기

by 시원


나는 직선적이고 편중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의 굳어진 표정은 이미 상대에게 답답한 소리 그만하라며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머릿속에는 반박하려는 수 십 가지의 말들이 순서 없이 마구 떠오르고 입이 근질거린다. 괜한 논쟁으로 관계를 망쳤던 과거의 경험들이 상대에게 휘말리지 말라고 나를 붙잡아 보지만 결국에는 발화점에 도달하고 만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먼저 이들의 존재를 빨리 알아차리고 피하는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천국과 지옥,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친구와 적, 손해와 이익.. 양 극단의 세계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흑과 백, 두 가지 색깔로만 이루어져 있다.


세상을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파악한 몇 가지 특징들이다.


1.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만 한정하여 사고한다. 매사에 진지하고 두려움이 많으며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잠시의 게으름이나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불행이나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이 정한 목적을 달성했을 때는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의 만족과 쾌락을 얻는다.


2. 자기 만의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특별한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이 이 사람들의 의식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설사 살아가면서 다른 경험이나 영향을 받더라도 최초에 뇌 회로에 입력된 주파수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극단적인 형질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한 바탕 위에 세상의 양 극단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만을 흡수하여 몸속에 축적한다. 이때부터 자유로운 이성의 판단이 아닌 업식이 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조정한다.


3. 잘못된 흑백논리로 상대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다(거짓 딜레마 : false dilemma).

"그럴 거면 아예 때려치워",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됐고, 예스 노만 말해".. 이러한 말투에는 제3의 선택지가 없다. 다른 시도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아예 차단시켜 버린다. 상대의 제안은 검토조차 되지 않고 묵살되어 버린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요나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내편과 네 편으로 양분한다. 상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다.


이들은 중간(무풍) 지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들의 위협에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는 이성적인 사람들은 불안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가는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들의 본능이 생존을 위해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고 재촉한다.



이분법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회는 논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소모적인 억지 논쟁만 난무한다. 때로는 '틀린 답 두 가지'를 두고 오랫동안 양 진영으로 나누어 격렬하게 싸운다. 바로 눈앞에 있는 해답조차 찾지 못하거나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낭비와 기회 손실은 고스란히 두 패거리의 선동에 부화뇌동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떠안아야 할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둘 다 좋아 "라고 대답한다. 아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떤 대답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는데도, 아이는 생존에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AB를 선택한 것이다.


강요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제3의 선택을 한 아이의 판단력과 창의력을 배워야 한다.

지금 행복감을 못 느낀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이 만든 기준으로 보면 나는 착한 사람의 부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양 극단이 아닌 중간지대 어딘가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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