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Dec 05. 2022

글쓰기 자기 점검(2)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며칠 동안 정말 느낌이 좋았다. 소재도 참신했고 영감도 끊임없이 솟구치면서 일사천리로 A4 여러 장 분량을 순식간에 채웠다. 뇌와 손가락이 완전 일체가 되어 지시와 행동의 구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편집하는 과정에서 50% 이상이 순식간에 삭제되었고, 다음 날 남은 분량마저 쓸쓸히 사라졌다. 제목과 첫 문장만 겨우 살아남았다.

며칠 동안 작가로 연기하면서 쏟은 노력과 열정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자 영감을 많이 받은 글일수록 자꾸만 의심을 하게 된다. 결국 내일이면 다 버려질 글이 아닌가..



본격적인 편집은 발행 후부터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첫 문장을 작성하고 몇 시간 만일 때도 있고, 며칠 동안 낑낑거린 다음일 때도 있다. 더 이상 편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바로 그 느낌이 드는 순간 발행을 누른다.


그리고는 유체이탈의 기분으로 내가 내 글의 독자가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편집을 시작한다. 발행을 누를 때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편집에 대한 의욕이 솟구치고, 편집해야 될 단어와 문장이 마치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 것처럼 눈에 팍팍 들어온다.

발행하기 전까지는 일기처럼 쓰다가 발행 후에 브런치 작가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긴장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지켜보고 있어야 정신을 차리는 스타일이다.


 편집 본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회사원은 보고서가 실적이라는 말이 맞다. 기획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각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 한참 보고서를 많이 작성하던 시절에는 작품을 만들 듯 서로 경쟁이 붙어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공들여 만든 보고서도 상사 앞에서는 불과 몇십 분 만에 초토화가 다. 그때는 빨간 플러스 펜만 봐도 화가 났다. 나와 팀원들의 작품(?) 위에 아무렇게 휘갈겨 쓴 빨간 글씨들은 정말 성의 없고 품위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내가 보고를 받는 위치가 되었다. 먼저 문구점에 가서 플러스 펜을 색상별로 구입했다. 옛날 생각도 나고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빨간색 플러스 펜 대신에 파란색 플러스 펜을 사용했다. 이유는 파란색이 조금 더 교양 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팀원들 눈에는 빨간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서 간소화와 전산화 등으로 보고서를 편집할 일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편집 본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나는 키보드 두들기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하지만, 생각의 속도는 키보드반의 반도 못 따라간다. 편집하는 시간을 줄여 보려고 깊이 생각한 다음에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많이 읽히는 색깔 있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