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뷔페식당에서 딱 한 접시만 먹는다

by 시원


나는 어릴 때부터 식사량이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사춘기 때도 반찬 투정을 하거나 음식의 양과 질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먹는 양이 적다고 해서 또래보다 작거나 힘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이러한 체질은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이지만, 환경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가난한 집안에 최적화된 착한 체질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면서 남들처럼 비싼 음식을 좋아하고, 가끔 유명 맛집을 찾아 먼 길을 달려가 줄을 서서 먹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나의 소식(小食)과 간편 식사 습관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결혼식이나 행사에서 뷔페 식사를 할 때는 한 접시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해진미 앞에서 통제력을 잃고 한두 접시 더 추가할 때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 나 같은 식성을 가진 사람한테 뷔페식은 가성비가 매우 낮은 선택이다.


이러한 음식 체질은 다른 신체적 특징으로도 나타난다. 평소 감기나 스트레스에도 거의 없던 두통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자동 반사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지하철, 운동 경기장, 행사장 등이 대표적인 곳들이다. 마치 뷔페식당에서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한꺼번에 섭취할 때처럼 몸의 균형무너지고 마음까지 불편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종종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나는 갓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들을 주로 맡아 왔다. 잦은 회의와 출장, 끝없는 토론과 협상, 때로는 논쟁과 타협까지..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상대를 끈질기게 설득해야 했고, 진급과 연봉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면 쉽게 지쳐 버린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면서 소화불량과 편두통에 시달리고, 주말에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을 닫고 지낼 때가 많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를 지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만났던 여러 종류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 교류하고 있는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 이들은 모두 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같은 편에서 협력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편에서 경쟁하는 사람들도 있다. 늘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내 입맛대로만 사람들을 판단하고 분류하려고 한다. 얄팍한 이익에 따라 편을 가르고, 근거 없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 짓기도 다. 때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과도하게 쏟아붓고,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실망감에 괴로워한다.


체질상 뷔페 음식 두 접시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내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늘 편두통에 시달리는 그런 내가 인간 군상을 모두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는 과욕이다. 일 보다 사람을 더 힘들어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중에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얇고 넓은 인맥은 시간이 지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다. 소수여도 두껍고 깊은 인간관계가 오래가는 법이다.


뷔페 진열대를 가득 채운 음식들이 아무리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아도 내가 먹지 못하면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나의 소화력을 생각하지 않고 식탐을 부리다가는 몸속에서 독으로 변할 것이다.


체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평균 수명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내 체질에 맞는 음식을 정성껏 담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야겠다. 한 접시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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