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초보 수행자의 작은 깨달음
언제부턴가 퇴근 후 술자리가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바뀌었다. 직장인들의 금요일 저녁을 가족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목요일에 집중된 회식은 금요일 회사 화장실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전날 과음으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볼 일을 보지 못하고 출근한 사람들과 한 번으로 끝을 보지 못하는 과민해진 아랫배를 부여잡은 사람들로 화장실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때로는 복도 밖까지 대기줄이 이어지기도 하고, 아래층 위층 빈칸을 찾아 다급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빨리 좀 나오라고 소리치던 한 동료는 급기야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뺀 구부린 자세로 회사 옆 건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가끔 상사에게 대기 순서를 양보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직원도 눈에 띄었다.
대기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제히 고개를 들어 줄어드는 인원수를 확인하고는 대장에 몰려있는 신경을 다시 휴대폰으로 분산시켰다.
드디어 바로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들어가고 내가 1순위가 되었다. 하지만, 다들 작당이라도 한 건지 오랫동안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늘 이런 상황에서는 재수가 없는 편이다.
점점 조여 오는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버티는 10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꽉 다문 어금니의 압력으로 호흡이 힘들어질 무렵, 어느 칸에선가 화장실의 정적을 요란하게 깨는 물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들어 본 물소리 중 가장 청량하고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변기에 앉기 전에 고통스러웠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심정으로 레버를 한번 더 눌러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통쾌한 촉감과 시원한 물소리를 즐겼다.
변기 물소리가 주는 선물은 종종 주말 골프 클럽하우스에서도 얻을 수 있다. 이른 아침 라운딩 시간을 맞추느라 묵직한 밀어내기는 골프장에 도착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상쾌하게 사라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제발 오늘은 몸에 힘을 빼고 자연에 순응해 보자고 누차 다짐해 본다. 마음속에 선명하게 입력된 물 내려가는 소리는 18홀 내내 ASMR이 되어 몸과 마음 모두 가볍게 해 준다.
이러한 경험을 자주 겪으면서 나는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들을 때면 뭔가 큰 고민 하나가 시원하게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답답하고 지겹게 이어지던 주말 고속도로의 꽉 막힌 흐름이 어느 순간 뻥하고 뚫리면서 가속페달에 닿는 오른발 끝의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바로 화장실로 간다. 일단 회사 금요일 화장실처럼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변기에 앉기 전에 먼저 레버를 가볍게 누른다. 밤새 차례를 기다렸을 한 덩어리의 물이 경쾌한 소음을 내며 고요한 아침 공기에 균열을 일으킨다.
볼 일을 다 본 후에는 변기 뚜껑을 닫고 레버를 힘차게 누른다. 몸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않은 독소와 아직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전날의 찌꺼기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지하 세계로 세차게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 하루 또 세상과 맞설 준비를 마친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