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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Feb 10. 2023

성질 더러운 상사와 진상 고객 중, 누가 더 힘들까?

고객관점의 자기 주도적 직장생활


만약 당신이 입사 면접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당신이 입사를 하게 되면 지원이 가능한 두 개 팀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사 같은 상사 밑에서 진상 고객들직접 상대해야 하는 팀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만 성질 더러운 상사를 모시일을 해야 하는 팀입니다. 둘 중 어느 팀을 선택하겠습니까?"


예전에 실무 부서 팀장들도 어쩌다가 한 번씩 신입사원 채용 면접관으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질문 항목들은 기본적으로 인사팀에서 미리 준비하지만, 면접관 재량으로 한두 개의 질문이 가능했다. 내게 차례가 왔을 때 나름의 의미를 담아 위에 언급한 '상사와 고객' 관련 질문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신입사원들의 천편일률적인 밋밋한 답변에 그만 썰렁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되고 말았다.


"어떤 팀이든 상관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입사 지원자들의 표정에는 어설픈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안도와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우문현답이 바로 이런 것인가..

면접이 끝나고 인사 부문 본부장이 모서리 자리에 앉아 있던 내게 한마디 던졌다. "김팀장, 우리 회사에 성질 더러운 팀장들이 있었던가? 설마 본인을 두고 한 질문은 아니지?" 농담조의 지적에 나만 빼고 다들 한바탕 웃었다.


며칠 뒤 다시 면접관으로 입사 지원자들 맞은편에 앉았다. 다행히 그날은 인사 본부장 대신에 직급이 조금 낮은 중역이 면접관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실패했던 질문'을 한번 더 써먹어 보려고 했다. 더 이상 효과가 없으면 인사에서 다시는 나를 면접관으로 부르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질문의 의도에 비슷한 답변이라도 한 번은 꼭 고 싶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4명 중 나이가 가장 들어 보이는 남자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면접의 달인은 나의 눈빛에 담긴 질문의 의도를 놓치지 않았다.


제가 지원한 000에는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고객이 회사의 재산이며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차분하게 답변을 했다. 마치 다른 회사 면접에서 유사한 질문을 이미 받아 본 사람 같았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답변이 끝난 뒤에도 면접관들의 시선지원자에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뒤에 마케팅 에서 일하고 있는 그 지원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입 직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내가 맡은 팀으로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대부분 관리자들은 현장 근무. 특히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하지만, 까다로운 팀장 밑에서 몇 년 일한 직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보면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객 관련 팀으로 이동하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깐깐한 바이어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렸거나 고객관리 업무에 지친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차라리 성질 더러운 팀장 밑에서 일하는 이 낫다고 한다.


상사와 고객을 힘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위를 맞추려니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사는 엄밀히 말해 월급 받고 일하는 같은 직원인데,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혹은 회사가 임명한 직책을 무기로 동료들을 대상으로 갑질 행위를 하는 것은 누구나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감정노동법 시행 이후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일부 고객들은 여전히 직원이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직장(특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체)에 몸 담고 있는 동안에는 상사와 고객, 이 둘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하는 일은 직간접적으로 고객과 관련이 되어 있다. 당신이 다니는 회사의 물건(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고객은 말할 것도 없고, 상사 또한 결국에는 당신의 고객이라고 봐야 한다. 어떤 경우든 고객을 상대하지 않고 밥벌이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입사를 위한 면접장에서는 당신의 고객은 면접관이다. 만약, 면접관이 입사 시 고객을 위해 자존심을 굽힐 수 있냐고 질문한다면 백이면 백 서약서라도 쓸 것이다. 내가 면접 때 지원자들에게 했던 질문의 요지도 바로 이러한 고객의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떤 답변을 어떻게 하든 고객을 가장 먼저 고객을 생각하는 마인드를 확인해 보기 위해 성질 더러운 상사를 같이 끼워 넣었던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객중심의 마인드가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다면 자기 주도적 직장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예전에 성질 더러운 상사 밑에서 까다로운 고객들을 상대로 몇 년간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양쪽에서 욕을 먹다 보니 출근이 두려웠고 하루하루 진퇴양난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주말에는 여러 회사들을 서칭 했다.


나를 살린 것은 관점의 전환이었다. 어느 날 내가 산 물건에 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해당 제품의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큰 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난 간 생각은 내가 상대하는 고객들도 나와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의 연봉의 원천은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뻔한 사실이 마치 큰 깨달음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도 누군가(직장 동료들이나 상사)의 관점에서는 반복적으로 하자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당신이 비록 경험이 부족한 미숙련 팀원이라 할지라도 당신 또한 상사의 고객이다. 상사 입장에서는 미숙하고 잘 삐치는 당신을 최대한 다독거려서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만들어야 상사 본인도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연봉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사는 자신의 방식으로 당신과 팀원들을 독려할 뿐이다.


고객도 마찬가지다. 당신 앞에서 회사의 제품(서비스)을 욕하며 악다구니를 퍼붓는 것은 '제발 나의 불만을 해소해 주세요. 부디 내가 손해보지 않도록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다. 고객은 당신에게 화를 내지만 실제로는 회사와 제품(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고객은 자신관점으로만 요구를 하다 보니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과 다를 뿐이다. 고객의 요구는 늘 정당하다. 다만, 회사가 정한 원칙과 규정(혹은 국가가 정한 법)에 부합되지 않아 원하는 만큼 못 들어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까다로운 상사나 고객을 만날 때면 입사 지원자들에게 했던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한번 던져 본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현명한 답변을 해 준 그 직원(여전히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고객이 아니었던 사람은 부모님 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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