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Feb 16. 2023

호칭, 구호, 폴더인사에 대한 불편함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 경험과 환경다르다 보니 같은 사건과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이 제각각이다. 여기에다 이해관계까지 더해지면  복잡하게 의견들이 나눠진다. 나이, 성별, 지역, 직장 내 직급과 업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일심동체라고 하는 부부사이조차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의견 대립이 자주 일어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회적 현상들 중에서 시비를 가려야 할 정도의 사안(법, 양심, 타인에 대한 피해 등)이 아니라면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논쟁은 분명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도 없는 나의 무겁고 재미없는 얘기들을 참고 들어줄 청중이 없으니 논쟁할 기회도 없다. 그나마  생각을 글로 적을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진다.

글을 쓰면서 종종 사회비평가가 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오늘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현상들에 대해 사회비평가가 된 기분으로 적어 보려고 한다. 시비를 가릴 수 없고, 또 가려서도 안 되는 그저 습작하는 사람의 단상일 뿐이다.



먼저 호칭대한 얘기. 주로 내가 고객이 된 상황에서 나를 부르는 어색한 호칭이 귀에 거슬린. 손님이나 고객님, 혹은 000님 등으로 불리는 것은 괜찮은데, 사장님이나 아버님 등의 호칭은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친근함을 표시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마스크 때문인가.. 


이와는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반말하는 것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다. '어이 학생'이라고 부르거나, 특히 총각, 아가씨 등의 호칭은 어쩐지 전근대적인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다 상황과 문법에 맞지도 않는 존칭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사람에 대한 어울리지 않는 존칭도 불편한 마당에 물건에까지 굳이 정체불명의 존칭을 붙이는 것은 언어에 대한 모독이라생각마저 든다.



'파이팅'은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응원 멘트지만, 나는 이 호전적인 구호를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영미권 문화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인 데다가,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귀에 거슬린다.


언제부턴가 가정과 직장, TV 프로그램, 행사, 운동경기, 정치권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든다. 응원하고 위로하는 선한 마음이 담긴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다양한 응원의 표현들(힘내라, 브라보, 멋있다, 괜찮아 등)도 함께 유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하여'라는 구호 또한 수 십 년째 각종 회식 자리에서 애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회식자리와 건배 제의 모두 크게 줄어들었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건배 제의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위하여'의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위하여'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느껴지는 데다가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게 한다. 굳이 참석자 모두가 큰 소리로 함께 구호를 외치며 들썩거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쾌한 회식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방식은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아시아 지역에만 있는 인사법이다. 유교 종주국인 중국은 사회주의 정부 이후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한국과 일본에는 여전히 이런 인사방식이 남아 있는데, 한국 또한 서구 문화의 영향을 으면서 예전만큼 과도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직장에서 허리를 거의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모습들(특히, 젊은 직원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MZ 세대들이 많이 출현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디션 프로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에게 혹은 어린 연예인들이 연예인들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연신 과도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건방진 것보다는 예의 바른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은 백 번 천 번 지당하다. 다만, 선후배들 간 쓸데없는 군기 잡기나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계산된 몸동작이라면 좀 자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허리를 굽히는 것이 자칫 비굴해 보이거나 뭔가 크게 사과할 일이나 부탁할 일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릴 때 교육받은 폴더인사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현상이든 한 가지 측면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괜찮은데 나만 거슬린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내가 세상의 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잠시 비평가로 빙의하여 세상을 바라보니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평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고령화 시대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