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나와 아내 사이에 소통을 이어주는 고마운 매개체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썩 즐겨보지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TV 드라마와 넷플릭스 시리즈물들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뻔한 멜로나 막장 드라마는 여전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 공통의 취미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면 먼저 출현 배우들부터 확인하는데, 최근에는 관심이 하나 더 생겼다. 아내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나는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감독이나 PD도 관심 인물이긴 하지만, 자막에 나타나는 '극본' 뒤에 붙은 이름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름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작가의 얼굴과 다른 작품들을 검색해 본다. 오래전에 재미있게 본 인기 드라마 몇 편이 같이 검색되자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문득 시나리오 작가들의 수입이 궁금해졌다. 인기 드라마 작가들의 원고료 수입을 조회해 보다가 입이 쩍 벌어졌다. 몇몇 스타 작가들은 회당 무려 1억 원! 물론, 최상위 소수 작가들의 얘기다.
인기 드라마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니 방송작가들의 연간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저기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평균 원고료가 대략 회당 100만 원 정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는 감독이, 뮤지컬은 배우가, 드라마는 작가가 작품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이어서 드라마의 스토리와 배우들의 대사로 관심이 옮겨갔다.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확인하며 따라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내 예상이 맞을 때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했다는 뿌듯함과 짜릿함이 느껴진다. 때로는 예상을 벗어난 반전에 허를 찔리고, 명대사와 명장면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명색이 브런치 작가라는 사람이 드라마를 재미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비평가가 되어 이런저런 주제넘은 지적들이 늘어난다. 작가의 숨겨진 뜻을 내가 감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왠지 스토리가 밋밋하고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고개가 갸우뚱거릴 때가 있다.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해 배우들의 연기력마저 어색하다. 시청률을 조회해 보면 어김없이 낮게 나온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나라면 저 대목에서 어떻게 썼을까? 이 상상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직 남아있는 재미다.
나는 어느덧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 해설자가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졌다고 잘난 체하며 떠들었지만, 아내는 오히려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자세에 대한 아내의 생각은 확고하다. 드라마를 시청할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보는 것이 시청자의 기본자세라고 한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보라고 부추길 때와는 앞뒤가 안 맞다. 비판의식 없이 작가가 되기 어렵다는 말에 아내도 나의 드라마 해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동안 조용한 시청자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드라마 마니아답게 관찰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를 나 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집어내고, 다음 회차에 대한 예상 적중률이 높은 편이다. 나의 비평에 재비평을 할 때는 논리적이고 날카롭다.
우리 부부의 대화가 풍성해질 무렵 아내에게 위기가 닥쳤다. 나의 영향을 받아 지적과 비판이 늘어나면서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드라마를 있는 그대로, 통으로 보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분석하고 따지는 바람에 재미와 감동이 사라져 버렸다. 아내는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며 물어내라고 하소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판의식이 축적되면 다시 재미와 감동을 조절하는 감각회로를 회복할 것이라고 아내를 달랜다. 사실은 나도 잃어버린 그 감각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만큼 드라마의 재미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남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아내가 만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