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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Sep 06. 2022

이제 그만 나이는 잊어버리자

지혜로운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


가끔 나이에 대한 기준이나 개념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상상이 잘 가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도 법과 규칙, 매뉴얼로 정해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시시대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나이에 따른 서열과 질서는 존재해 왔다.


자연인이 되어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산다면 모를까 조직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 나이 차이가 만드는 서열과 질서는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순기능과 역기능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사회의 성숙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나이에 대한 관심과 의미부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확실히 각별하고 유별나다. 유교문화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다 보니 사회 곳곳에, 우리들 의식 속에 나이가 만들어놓은 질서와 행동규범들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나이 외에도 학년, 학번, 입사 연도, 기수 등 온갖 숫자들은 관리행정의 편의를 위한 단순한 의미만은 아니다. 이름보다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간단한 숫자는 서열이 되어 거기에 필요한 질서(호칭, 화법, 행동규범 등)를 정해준다. 누가 심부름을 해야 하는지, 누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누가 지갑을 더 자주 열어야 하는지 등.. 상식과 센스 개념까지도 포함된다.

 

놀라운 것은 요즈음 MZ세대들의 나이에 대한 민감도와 의미부여는 기성 꼰대 세대들 못지않다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이 선배 가수들에게 90도를 넘어가는 폴더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하다. 가끔 아들의 학교 얘기를 들어보면 선후배 사이의 엄격함은 거의 7080 세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빨리 친해지려는 목적은 이해하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 살 차이에도 곧바로 형제자매의 호칭을 주고받는 것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가 꼰대 세대여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들이 순기능적인 측면도 있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만드는 서열과 질서가 흐려진다면 우리 사회 곳곳은 아마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다. 나이 질서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의 전통이기도 하다.


하지만, 악습으로 인한 피해와 손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악습은 절대 전통이 될 수 없고, 익숙함을 순기능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자발성과 합리적 이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만들어 놓아야 한다.




'나이보다 훨씬 젊으시네요' 이 말은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기분이 좋다면 평소 이 말을 자주 듣지 못하거나 나이보다 더 늙었을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이 멘트에는 영혼과 진심이 빠져나가 버리고 껍데기만 남았다.

왜냐? 4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 국민 모두는 본인이 나이보다 훨씬 젊다고 믿고 있다. 뻔한 사실을 칭찬이라고 던지는 인간의 게으름이 느껴진다. 제대로 칭찬을 하려면 상대를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서열 못지않게 나이와 관련한 호들갑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명하다. 청춘예찬부터 시작해서 내 나이가 어때서 까지 나이와 관련한 덕담, 위로, 한숨 등이 넘쳐난다. 노래 가사에 사랑과 이별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나이와 관련한 것이다. 나이에 눌려서 낑낑거리고 있다.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이들을 자극하여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한 온갖 마케팅 광고, 프로그램, 이벤트 등이 난무하고 있다. 건강과 미용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체의 나이를 한 살이라도 젊게 만들고 싶은 집착과 욕망에 기인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어마어마하다. 건강을 유지하고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혹은 잠깐 가리거나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세는 막을 수가 없다. 몸부림을 칠수록 스트레스는 많아지고, 얼굴은 욕심과 조급함으로 오히려 추해지고 만다.


나는 최불암, 허영만, 최백호 등과 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말투에서 묻어나는 중용의 완숙함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져 편안하고 여유롭다.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마음을 청춘에 묶어둔다. 신체 나이는 몸부림을 치다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마음만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어차피 마음이란 것이 신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10년, 20년 정도는 내가 임의로 정하면 그만이다.


사람들의 약한 심리를  빨리 알아차리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데가 마케팅이다. '건강과 미용' 옆 빈자리를 이제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서 '나이 호들갑' 트리오가 완성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젊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숫자 나이와 신체 나이보다 마음의 나이가 더 늙어가고 있다. 숫자 나이와 신체 나이의 속도를 마음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은 저쪽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뒤로 처지고 있는 것이다.


얼굴 피부를 당기고 젊고 세련된 옷을 입고, BTS의 춤과 노래를 흉내 내고, 청춘들의 암호 같은 언어와 이모티콘을 SNS에 날린다.. 때로는 젊은 시절의 어느 시점에 마음을 묶어두기도 한다. 오래된 사진 속의 젊은 나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다.

마음이 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 부정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팍팍 늙어가는 것이다.



신체 나이와 달리 마음의 나이는 젊다 늙었다 라는 기준과는 맞지 않는다. 마음에는 어리석은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 이렇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숫자 나이가 몇살이든 고집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리석은 마음이다. 착각과 무지에 사로잡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마음이다. 나이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어리석은 마음이다.


반면에,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지혜로운 마음이다. 어리석지 않은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이다. 마음을 닦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철들자 노망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수많은 이유와 핑곗거리가 있겠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만들어 온 내 인생의 성적표다.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나이 들어 지치고 병든 몸은 제대로 익은 지혜로운 마음을 필요로 한다. 신체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균형을 잡아갈 때 거기에 '참나와 대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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