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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Mar 17. 2023

좋은 친구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 위로가 되어주던 이웃사촌도 이제는 대부분 사라졌다.



코로나 사태 훨씬 이전부터 한국 사회는 대인관계에 지쳐가고 있었다.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던 시절은 저물어 가고, 혼술과 혼밥으로 대표되는 '혼삶'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원래 사교성이 부족한 민족이니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사교적이지 못하면 혼자라도 잘 놀아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외로움은 유달리 많이 탄다. 혼자 살고 싶어 스스로 친구들을 다 끊어 놓고는 이제 와서 위로해 줄 친구가 없다고 괴로워한다.


한국 사회는 예로부터 친구를 만들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회적 특징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농경민족의 특성과 유교 문화가 섞이면서 내성적인 성향의 DNA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교 활동에 의한 자연스러운 친목보다는 위계질서에 따라 정해진 대인관계에 훨씬 더 익숙해져 버렸다. 학연, 지연, 혈연 등 분명한 인연의 고리는 고맙게도 복잡다단한 밀당의 과정을 생략시켜 주었다.




나이를 따지는 관습 또한 한국 사회에서 친구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같은 나이가 아니면 친구 관계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다. 한 살 차이에도 아래위로 엄격한 질서가 존재한다. 누나, 언니. 형, 선배 등의 정해진 호칭과 함께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MZ 세대의 나이 구분이 오히려 기성세대들 보다 더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나이가 친구 관계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우리 만큼 심할 정도로 진지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연장자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선배로부터 받는 구박은 견디지만, 후배가 조금만 예의에 어긋난 언행을 하면 용서가 안된다. 모두 껍데기뿐인 체면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연장자에 대한 존중과 예우를 중요시하지만, 한국처럼 나이를 대인관계에 과도하게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유교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나이 차이는 친구를 사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친구와 관련한 사자성어들이 많이 발달한 것을 보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문화가 비단 사회주의 체제 영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말이 있다. 나이를 따지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이를 잊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만 고집하다가는 평생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이 외에 친구 만들기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바로 속마음이다. 요즘은 절친이라고 불릴 정도로 관계가 깊어야 진정한 친구로 인정받는 형편이다. 절친이 되려면 무장해제에 가까울 정도로 마음을 솔직하게 오픈시켜야 한다.  


어느 나라든 오픈 마인드가 친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맞지만, 한국 사람들은 유독 진심에 대한 요구와 기대치가 높은 편이다. 모름지기 한국에서 친구라고 하면 시시콜콜한 속사정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관계, 경제 상황, 과거의 크고 작은 아픔들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친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에, 상대가 속마음을 오픈하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과 의심이 먼저 일어난다. 당장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줘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불신의 씨앗이 마음의 벽을 만들고, 나중에는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관계를 악화시킨다.



내 마음에 쏙 드는 100점짜리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80점도 친구고, 심지어 30점짜리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술잔을 부딪히며 수십 년의 추억을 소환하고, 나의 불행에 눈물을 흘려줄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는 아니다. 힘들 때 미소만 지어줘도 친구가 되고, 내가 불리할 때 중립만 지켜줘도 고마운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일단 나이와 속마음부터 잊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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