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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pr 16. 2023

실수와 부족함이 무기가 될지도 모르는 세상

인공지능에 맞서는 아마추어 작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챗GPT가 쓴 수필 몇 편을 읽어 봤다. 독창성조금 부족해 보였지만, 평이한 단어들의 자연스러운 조합, 박자감 있는 매끄러운 흐름이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인공지능이 쓴 글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읽었는데도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쓴 글들과 비교가 되면서 마음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챗GPT는 등장하자마자 세상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아직 챗GPT를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최근 직장에서 교육용 영상을 면서 새로운 세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영상에서 챗GPT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답변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곧잘 소화해 다. 질문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적절하지 않은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기능을 보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진화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인간의 뇌 기능에 근접하는 초거대 AI와 생성형 인공지능이 출현한다고 하니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로 잔뜩 들떠 있지만, 지나치게 빠른 인공지능의 발전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교육과 언론계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겠지만, 창작(글, 음악, 그림, 디자인 등)과 관련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공지능의 존재는 상당한 도전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작가를 꿈꾸고 있는 나 또한 건방진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챗GPT이 앞으로 더 진화하면 분명 기성 작가들의 창의력과 문학적 감각까지 흉내 낼 것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이 태풍급 강풍에 송두리째 흔들거린다. 일찌감치 패배를 선언하고 마음 편하게 인공지능의 독자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무모하더라도 인공지능에 맞서 계속 도전해 볼 것인지.


인공지능 작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나 같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과연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공 냄새가 아닌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나만의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상황과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참고할만한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바로 사람과 기계간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사람과 기계 간 전쟁이 벌어졌다. 기계의 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거스르기 힘든 시대의 큰 흐름에 직면한 사람들은 결국 기계에 굴복하고 말았다. 기계와 무모한 전쟁을 하기보다는 기계가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기계문명이 제공하는 혜택은 사람들이 받은 패배감을 충분히 보상해 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계문명이 주는 안락함에 푹 빠져 있을 때 끈질기게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날로그 방식과 감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공산품에 맞서 수작업에만 의존해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든다.


제작 기간이 길고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과 감성면에서 기계가 만들어낸 제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술품과 공예품을 비롯하여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물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외에도 도자기, 가구, 햄버거, 맥주 등 우리들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수제' 물건들이 있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와 뜨개질로 만든 목도리도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계에 굴복했지만, 소수의 장인들은 사람만이 지니 있는 고유의 감성꿋꿋하게 지켜내고 있다.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도 장인의 혼과 독창성까지 흉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계류들과 비교하기에는 인공지능이 지나치게 고차원적인 존재임에 분명하다. 기계와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면서도 살아남은 장인들을 따라 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글쓰기에 쏟아부은 시간들이 아깝고 글쓰기에 대한 나의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그래서 생각을 한번 바꿔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인공지능 작가들과 정면 대결에서 이길 승산이 없으니, 차라리 내가 쓴 글에서 사람의 향기라도 나게 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향기는 바로 '실수와 부족함'이다. 군데군데 어색한 표현들이 있앞뒤가 조금 안 맞아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말쑥한 인공지능 글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다.    


아마존의 어느 부족은 목걸이를 만들 때 일부러 흠집 난 구슬을 한 개씩 끼워 넣는다고 한다. 이 흠집 난 구슬은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린다. 영혼을 지닌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르시안 양탄자를 만드는 직조공들은 세상에 완벽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장인정신에 따라 양탄자에 일부러 흠을 조금 남겨 놓는다.     



마트 한쪽 구석에 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야채들과 흠집이 여러 개 있는 못생긴 과일들이 보인다. 팔다가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격은 일반 물건들보다 훨씬 더 비싸다. 화학 비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유기농 제품이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맛과 영양, 모두 훌륭하다.  


앞으로 더 강력한 인공지능이 출현하더라도 나에게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 지금의 실수와 부족함을 잘 유지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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