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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May 06. 2023

안 보면 멀어져서 좋은 사람들

마음의 거리


좋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변치 말자고 다짐하고 약속도 해 본다.

하지만, 마음은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눈이 안 보면 마음은 덩달아 멀어지기 마련이.


대부분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마음을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마당에, 나는 엉뚱하게도 안 보면 멀어지는 이 자연의 법칙이 오히려 고맙고 다행스럽다.


지금 나의 단순하고 평온한 삶은 어쩌면 내게서 멀어진 많은 관계들과 비슷한 속도로 같이 식어버린 나의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그 많은 사람들과 지금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다면, 나는 지금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직업이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직장인인 내게 많은 인맥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다.


젊었을 때는 인맥이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내 영향이 큰 상사들이나 핵심 부서 동료들과 친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친구의 친구들까지 친구로 만들려고 애를 썼고, 옷깃만 스친 사람들의 경조사까지 가능한 챙기려고 했다. 그들 중에는 나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었고,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새로운 드라마를 촬영하듯이 내 주변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바뀌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드라마 속에서 다른 엑스트라로 빠르게 교체되었을 것이다.


특히, 직장 동료들은 현직을 떠나면 순식간에 멀어져 버린다.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퇴사나 이직 후 1-2년 정도 지나면 교류가 뜸해진다. 꽤나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조차도 한두 번 만나고 나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락이 끊긴다.


직장에 있을 당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던 치열함과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철 지난 무용담들만 남아있다. 동고동락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억제되어 있었던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의 기억이 슬며시 올라온다.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진 마당에 서로가 주고받을만한 연결고리는 더 이상 찾기 어렵다.   


공간이 만들어 놓은 동질성은 마음의 간격을 일시적으로 좁혀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효력은 오래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자그마한 인연의 끈을 연결시켜 보려고 오랫동안 비용과 공을 들인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고 멀어진다. 이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차면 기우는 자연의 법칙이자, 세상살이의 이치일 뿐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안 보면 멀어지는 사이는 어쩌면 원래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마음의 거리까지 가깝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절친의 기준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의 거리를 실제 보다 더 가깝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같은 직장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거리까지 가까워지것은 아니다. 물리적 거리와 일정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절친을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인 것처럼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뢰를 쌓기가 어렵다.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자주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다 보면 친구가 된 것 같지만, 조건이 바뀌고 거리가 멀어지면 자동차엔진처럼 빠르게 식어버린다.


평소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가까운 거리는 서로에 대한 온기를 느끼기에 적당하지만, 마음에서 풍기는 고약한 악취로 서로를 힘들게 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몸과 몸이 부딪히면서 생채기가 나고, 마음과 마음이 섞이면서 불필요한 감정들이 엉키고 충돌한다.



반면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도 마음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사람들도 있다. 수 십 년 만에 만나는데도 마치 어제까지 나누던 얘기를 이어서 하듯 편하고 자연스럽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세상인심에 맞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예전의 좋았던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


이찬원의 노래 '시절인연'의 가삿말이 좋다. 가는 인연 잡지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말라는 소절은 들을 때마다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오랫동안 안 본 얼굴들이 마음에서 멀어지자 책 읽기와 글쓰기 시간들이 부쩍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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