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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May 19. 2023

나를 만들어 가는 것들

나는 누구인가?


철이 드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대략 두 번의 철이 드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1차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익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시기, 즉 약관(방년)부터 이립에 이르는 나이대를 일컫는다. 2차는 오랜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기, 즉 불혹에서 지천명에 이르는 나이대라고 할 수 있다.


1차 시기는 가정과 학교의 교육에다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관계로 대부분은 성인이 될 무렵이면 기본기는 갖춘다. 하지만, 2차 시기는 오랜 시간 몸에 베인 업식(까르마)의 저항이 강해 철이 들기가 쉽지 않다. 1차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50대에 그동안의 관성으로만 살아간다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생을 후회와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50대는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시기인 동시에, 자신을 알아가는 지기(知己)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기(知己)를 위해서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가장 하고 싶어 하는지부터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든 놀이 삼아하는 취미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마음이 끌리는 일은 외부의 조건들이 바뀌어도 보람과 행복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되어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흔들림이 없다.



오래전 회사 연수 교육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참석자들이 차례대로 발표했던 적이 있었다. 쑥스러운 주제에 다들 난감해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대충 가족관계, 직장 내 나의 위치와 업무, 취향 등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강사의 의도에 한참 못 미치는 발표였 것 같다.


지천명의 나이대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면, 나의 실체에 조금 더 근접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깨닫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가장 크게 마음이 움직이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수행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는 일!


이 세 가지 일은 행운이 이어지면서 나와 연을 맺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보 단계지만, 정원을 가꾸거나 글을 쓸 때 비로소 '참나'와 마주한다.


40대 후반 갑자기 닥친  위기 앞에 맥없이 무너져가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수행을 시작했다. 몇 년간의 수행은 절망 속에 빠져있던 나를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자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뀌면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련이 오히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마음속에서 절망이 조금씩 사라지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찾아왔다. 지방 작은 도시에서 근무하던 시절, 텃밭과 화단을 가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난생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시작하자마자 내 체질에 맞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며 화초재배에 심취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오묘함은 내게 크나큰 보람과 위안을 안겨 주었다.


올해는 건물 옥상에서 정원사 3년 차를 보내고 있다. 은퇴 후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두는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며, 완벽한 중립의 상태인 자연의 이치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숙여진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자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블로그에 세 편의 글을 쓰는데 일 년이 걸렸던 내가 브런치에 들어와 약 10개월 만에 100편 이상의 글을 발행했다. 정원을 가꿀 때와 비슷한 어떤 형언하기 힘든 에너지에 이끌려 글쓰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들었다.    


시련 속에서 시작한 수행,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면서 발견한 화초 가꾸기와 글쓰기. 이전에도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들을 해 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시들해져 버렸다. 

이 세 가지 일은 나이가 들고, 주변 상황이 바뀌고, 대인관계가 단절되고, 부(富)의 크기가 바뀌어도 평생 동안 바뀌지 않을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아직 맞서야 할 외부의 조건들이 남아 있는 50대가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데 가장 적합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 50대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다른 나이대에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50대에 비해 간절함이 떨어진다. 더구나, 50이 넘어가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것으로 만들기에는 힘에 부칠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50대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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