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Jun 01. 2023

중년 남자의 고독사 예방법


최근 들어 고독사가 매년 8.8% 정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의 고독사 건수가 여자에 비해 5배 이상(21년 기준) 많을 뿐만 아니라, 증가율 또한 여자 보다 두 배이상 높다. 특히, 전체 고독사 중에서 50-60대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에 육박한다. 고독사는 이제 더 이상 놀랄만한 뉴스거리도 아니다. 50대 이상의 남자라면 누구나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50-60대 남자인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지독한 고독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나 또한 확률적으로 위험도가 가장 높은 나이대에 진입한 터라 고독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50-60대의 고독사 원인 중 질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어쩌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점점 폐물이 되어간다. 총기가 흐려져 조직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소원해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수 십 년간 몸에 밴 업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오래된 방식만을 고집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멀어지면서 외톨이, 외골수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무리 속에서 역할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존재감과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아주 오래전 원시 부족사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냥이나 농사 등에 유용하게 쓰이던 남자의 근력은 나이가 들어 쪼그라들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간다.

무리를 이끌 리더십과 지혜가 있다면 그나마 족장이나 제사장 자리라도 한번 노려볼 만 하지만, 대부분은 잉여 인간이 되어 죽음을 재촉할 정도로 쓸쓸한 노후를 보낸다. 나이가 들어도 육아와 살림살이 등의 역할 수행이 가능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후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역할과 존재감이 사라지면 삶의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허무와 무기력이 몰려와 더 살아야겠다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술에 의존하거나, 한적한 산이나 계곡을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50-60대 남자들은 수영장, 헬스장, 명상센터, 종교단체, 취미활동 등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퇴근 후 술자리나 주말 라운딩도 주로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다 보니, 직장 안팎에서 여자들과 교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게 수 십 년을 살아오다가 얼마 전부터 생활패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퇴근 후나 주말 시간에 여자들과의 직간접적 교류가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정하고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골라서 다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찾아서 할 뿐인데, 마침 그곳에 여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주 간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자들과의 교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술이다. 남자들은 술자리가 아니면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서 모임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친한 친구들조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락이 뜸해지고 술자리 모임이나 주말 라운딩은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내와 둘이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변화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맛집, 카페, 백화점, 산책길.. 어딜 가나 여자들을 많이 만난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트롯콘서트에 갔을 때는 중년 남자가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여자 화장실 대기줄은 수 십 미터에 달했는데, 남자 화장실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몇 년 전 수행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간대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0여 명은 모두 40-60대 여자들이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원을 가꾸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방문자들과 이웃신청을 한 사람들의 성별 분포를 보니 대부분이 40-60대 여자들이었다. 지금 브런치에도 나이대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얼핏 봐도 대부분이 여자 작가들이다.


백화점을 제외하면 나는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다. 이러한 변화는 대략 40대 후반부터 시작된 것 같다. 혹시 호르몬 균형이 깨진 게 아닐까 걱정되어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항목을 추가해 검사를 받아 봤는데 아직은 남성 호르몬 비중이 높게 나왔다.   



중년의 남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한 때 퇴근 후 밤거리를 주름잡았지만, 이제는 세월에 떠밀려 쓸쓸하게 밤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몸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심각한 것은 마음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맨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가해진 자신을 가족들이 반겨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10년 이상 만나지 못한 친구가 나와 술잔을 부딪힐 만큼 여전히 건강하다는 보장도 없다.


조용한 호숫가에서 세월을 낚거나 수 십 번을 오르내린 어느 명산 정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알코올친구 삼아 인생의 공허함을 달랠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일단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백화점은 제외)을 방문해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의사는 아니지만 호르몬 불균형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대체로 고독만 더 부치길뿐이다.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적어도 1-2년 정도 적응 훈련을 거친 후에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기 바란다. 그런 다음에 낚싯대를 잡을 것인지, 술잔을 다시 잡을 것인지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여자들만큼 장수를 누릴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만들어 가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