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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ug 26. 2022

'첫'이 부여하는 특별한 의미

처음처럼


'첫'이라는 한 글자가 앞에 붙으면 평범해 보이는 일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 처음 겪는 경험과 성공을 향해 처음 시도하는 도전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그 어떤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각별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때 그 순간 느꼈던 긴장과 설렘, 심지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마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첫인상, 첫사랑, 첫 직장, 첫 마음, 첫 수업, 첫아이, 첫 차, 첫 집, 첫 무대, 첫 거래.. 태어나 처음 겪는 모든 경험과 행위에는 자동으로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어 버린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살면서 수없이 반복되는 일들 중 순서상 그저 첫 번째일 뿐이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거나 신념과 가치의 기준을 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특별한 '첫 번째'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설사 희미한 기억이 되더라도 몸속에 저장된 그 '첫 번째'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경험들과 섞여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1) 초두 효과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첫인상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이성과의 교제나 비즈니스상 거래에서 첫 만남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다. 처음 만남에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면 이후 발생하는 비용과 에너지를 크게 줄여줄 것이다.    

중요한 연설이나 발표에서의 첫마디는 청중에게 무대 위의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 판단하게 만든다. 책의 도입부 첫 문장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첫 문장을 완성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특별한 공을 들인다. 경연 무대에 선 가수는 첫 소절에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미스트롯1에서  우승한 송가인이 '한 많은 대동강' 소절을 부르자마자 심사위원들의 리액션은 가수의 노래 못지않게 역대급이었다.


2) 성공을 향한 새로운 출발(시작이 반이다)

- 새로운 한 해 첫날이 상징하는 의미는 진지하고 간절하다. 혹한의 새벽 추위를 뚫고 높은 산에 오르거나 바다로 달려가 일출을 맞이한다. 새해 첫날의 태양(기도와 결심)은 아픈 과거를 잊게 하고 새로운 희망과 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사실은 대체로 뒤늦게 알아차린다. 첫 단추를 끼울 때는 보통 이상의 신중함과 집중이 필요하다. 첫 삽은 공식적 시작을 의미하는 의식이다. 시작이 반이니 첫 삽을 뜨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셈이다.

- 골퍼들(특히 주말골퍼)에게 첫 홀 첫 샷은 그날 라운딩의 컨디션을 좌우한다. 그래서 '일파만파'라는 관대한 로컬룰이 생겨난 것이다.

- 첫 직장은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관문이자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내의를 사드렸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초심불망을 잘 지킨다면 승진과 커리어 축적에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3)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

- '첫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으로 시작되는 이벤트 중에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매년 반복되지만 생일을 챙기고 축하하는 이유는 탄생의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 첫 차는 새로운 나만의 공간이자 이동의 자유를 의미한다. 첫 집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 유랑 생활 끝이다.


4) 첫 경험의 가치

첫사랑, 첫 작품, 첫 무대, 첫 경기, 첫 거래..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첫 경험이 주는 의미와 가치는 특별하다. 실패를 교훈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지만, 내 것으로 활용한다면 큰 성공을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가끔 그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훨씬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어리석고 미숙했기 때문에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첫 성공에서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리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첫 번째' 일들이 이제는 오래된 사진 속의 추억이나 술자리에서 가끔 소환되는 수다거리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기억력은 퇴화되어도 몸속에 저장되어 있는 '첫'의 경험과 의미는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떤 '첫'은 영원히 축하하고 싶은 성공이었고, 어떤 '첫'은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기준으로 의미를 부여하든 갖가지 첫 경험들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들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복되는 일상에서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는 새로운 경험을 기가 쉽지 않다. 첫 번째라고 할만한 이벤트도 없지만, 어쩌다 처음 경험을 하게 되어도 의미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관성에 몸을 맡기다 보니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와 부지런함이 사라져 버렸고,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이 낡고 무디어진 것 같다.


버킷리스트 중에 아직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장 실행 가능한 작은 일부터 찾아봐야겠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첫 번째 발행한 글의 제목이 '난생처음 떠나는 낯선 여행'이다. '첫 글'에 애써 그 의미를 담아 보려고 했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일이라도 마치 '처음처럼'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래된 익숙함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첫'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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