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잘 알려진 것처럼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타고난 정력과 여성편력이 있긴 했지만 바람둥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따로 있었다. 아들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현명한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엉뚱한 묘책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아들을 구해냈다.
카이사르가 10대 시절을 보내던 로마공화정 말기는 마리우스 시대가 저물고 술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술라는 원로원이 정한 무장해제의 경계선을 넘어 로마로 진군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무장 상태로 경계선을 넘어 로마로 진군한 두 번째 인물은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였다.
술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마리우스 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로마를 완전히 장악했다. 술라의 시대가 되자 카이사르에게 시련이 닥쳤다. 카이사르는 민중파인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동시에 술라의 처조카이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정치적 성향은 큰 고모부인 마리우스의 민중파에 가까웠기 때문에 술라에게는 정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당시 카이사르는 미성년의 나이였지만 술라에 의해 처형된 킨나의 딸과 결혼한 상태였다.
상당한 통찰력을 가진 술라는 어린 카이사르의 몸속에 수 십 명의 마리우스가 있다는 것을 간파했으나, 주변의 만류와 여론을 의식하여 카이사르를 살려두었다.
카이사르는 술라의 압박과 로마의 공포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튀르키예 지역인 아시아 속주로 파병되는 부대에 자원입대했다. 그에게는 총독 테르무스 아래 하급 참모 군관 자리가 배정되었다. 총독은 어느 날 술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카이사르에게 까다로운 임무를 맡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가혹한 처벌을 내려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속주 남쪽 미틸레네 섬에서 반란이 일어나 그곳 사령관인 루쿨루스로부터 함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함대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인근에 있는 로마 동맹국인 비티니아뿐이었다. 하지만,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는 교활한 데다가 아주 인색하여 함대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총독은 19살 하급 군관에게 군함 40척을 정해진 일정 내 지정한 항구에 도착시키라는 막중한 임무를 내렸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총독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카이사르를 처벌한 구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독재관 술라가 직접 편지까지 보낸 의도를 충실히 수행하고 싶었다.
뭔가를 보여줘야 했던 카이사르는 서둘러 비티니아에 도착하여 니코메데스 왕을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군함 40척을 요구했다. 잔꾀 많은 노쇠한 왕은 로마의 어린 하급 군관의 황당한 요구를 능수능란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타고난 말솜씨에다가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니코메데스 왕은 로마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후예인 카이사르의 화려한 언변과 담대한 배포에 매료되었다. 거기에다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는 볼수록 빛이 났다.
카이사르는 협박은 설득처럼, 설득의 말속에는 로마의 무시무시한 후한이 어떤 것인지 은근슬쩍 녹여 넣었다. 카이사르의 끈질기고 세련된 입담에 결국 군함 40척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게다가 카이사르는 비티니아 왕과 왕비를 친구로 만들었다.
40척의 군함들은 정해진 날짜에 맞춰 지정한 항구에 거짓말처럼 도착해 있었다. 진압작전을 맡은 사령관 루쿨루스와 군관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때 우쭐한 마음을 절제하지 못한 카이사르는 지나친 자화자찬을 하고 말았다. 기적 같은 전공은 곧 의심과 시기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루쿨루스는 교만한 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타입의 인물이었다. 그런 자에게 카이사르의 모습은 가증스럽고 오만방자하게 보였다. 그는 건방진 애송이의 콧대를 꺾어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니코메데스 왕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루쿨루스는 카이사르의 잘 생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로마인이라도 다 로마를 위해 자신의 몸을 팔 정도로 고귀한 목적의식을 지니진 않았으니까.. 자네의 그 얼굴이 배 40척을 끌고 왔다고 해야겠군. 아니면 그 엉덩이라고 해야 하나?"
이 말에 카이사르는 그만 발끈하여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루쿨루스의 자존심과 명예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독설을 퍼부은 후에 곧바로 아차 싶었지만 모욕을 당한 루쿨루스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루쿨루스는 카이사르를 로마 정치판에서 완전히 매장시켜야겠다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소문은 사람의 이동보다 더 빨리 로마에 도착해 있었다. 로마 정치계에서 나름대로 신망을 얻고 있는 루쿨루스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소년의 알몸을 미의 극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는 그저 개인의 성적 취향일 뿐이었다. 반면, 로마는 동성애자로 낙인이 찍히면 그것으로 정치 생명은 끝이 나고 귀족 사교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정치계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카이사르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러한 추문은 당사자가 정면으로 대응할수록 더 사실로 굳어지는 법이었다. 카이사르는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소문과 오해를 불식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소문을 무시하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혈기왕성한 카이사르는 자신을 향한 간교한 수군거림과 음험한 눈빛을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현명한 여자였으며,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절제력, 냉철함을 갖추고 있었다. 남편이 전사한 후에 홀로 어린 삼 남매를 키우던 그녀에게 하나뿐인 아들 카이사르는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어머니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아들을 위해서라면 살인조차 마다하지 않을 판이었다.
아들에게 여자를 유혹하는 특기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아우렐리아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한 가지 묘책을 제시하였다. 아들에게 바람둥이가 되라는 것이었다. 낯 뜨겁고 황당한 제안에 카이사르는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많은 여자들과 스캔들을 만들면 단기간에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명문 귀족 가문의 유부녀들이어야 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수부라(평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이미 바람둥이로 소문이 나 있었지만, 수부라의 소문은 수부라 지역 내에서 끝나 버린다. 귀족들, 특히 정치계에 소문이 퍼지게 하려면 무시무시한 입담과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귀족 여인네들이어야 했다. 소문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처녀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 다른 조건이 있었다. 남편을 바보로 만들 여자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이사르가 휘둘릴 정도로 똑똑한 여자는 곤란했다. 불륜이 드러나더라도 카이사르에게 강에 뛰어들라고 말할 정도로 카이사르를 휘어잡을 여자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신바람이 난 카이사르는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하여 순식간에 로마 최고의 바람둥이가 되었다. 그의 애정행각은 로마 사회의 일면 뉴스가 되었다. 귀족 여인들 사이에서는 카이사르와 하룻밤을 보낸 무용담이 회자되었고, 자신의 순번이 언제인지 조바심을 냈다. 그런 여자들의 수군거림에 아우렐리아는 흐뭇했다. 그녀는 오로지 중상모략에 빠진 아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카이사르는 어머니가 제시한 전략을 계속해서 충실히 수행했다. 설사 어머니가 '이제는 그만'이라고 외친다고 해서 멈출 카이사르가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한 여자를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단 한 번이라도 밤을 같이 보낸 여자들은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자기를 다시 안 만나줘도,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질투를 하지 않았고, 카이사르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장기간 먼 곳에 원정을 가 있을 때는 이 여인들이 카이사르의 무사귀환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이 기도발 덕분인지 카이사르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8년간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로마에 전황을 보고하러 가는 전령 편에 자신과 인연을 맺은 여인들에게 안부를 전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로마 명문가 귀부인들의 영원한 애인이자 우상이었다.
카이사르의 연애 스토리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나일강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여왕을 자기 여자로 만들고 이집트를 가볍게 정복하였다.
애인을 자주 바꾼 카이사르에게도 아주 오랫동안 만난 연인이 하나 있었다. 훗날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던 부르투스의 어머니인 세르빌리아다. 이 여인과는 20년간 지속적으로 만났는데, 아마도 외모는 화려하지만 머리가 텅 빈 다른 귀부인들과는 달리 카이사르에게 정치적 조언과 정치계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제시한 조건에 따르면 만나서는 안될 여자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을 위해 개선식을 거행하는 것은 로마의 전통이었다. 개선식 때는 병사들이 행진을 하면서 사령관을 위한 노래를 재미있게 개사하여 불렀다. 카이사르도 몇 차례 거창하고 화려한 개선식을 치렀는데, 이때 병사들은 '카이사르는대머리, 카이사르는 바람둥이'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노랫소리는개선행렬 맨 앞에서말을 타고 가고 있는 카이사르에게도 또렷하게 들렸지만 그는 그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