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가 아닌 '최고 사령관'이 된 황제들

로마제국 황제들의 특징(1)

by 시원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군과 게르만족 간의 전투 장면으로 시작된다.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병사들의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늙은 황제가 보인다. 황제가 전투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이 황제가 바로 '명상록'을 저술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오현제 중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파 철학자였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흥미진진한 복수 스토리와 실감 나는 검투 장면들이지만, 감독은 세심한 고증을 통해 나처럼 역사에 관해 상상하기 좋아하는 관객들의 부수적인 호기심까지 채워주고 있다.

영화 곳곳에서 로마 제정시대 황제들의 특징들, 다른 시대 군주들과 비교해 확연하게 구분되는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안락한 황궁 보다 거친 변방이 황제들에게는 더 안전한 곳이었다.


전쟁과 정복을 통해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로마의 권력 구조에 군인들의 파워가 새롭게 부상하게 된 것은 예견된 변화였다. 공화정 시대 원로원, 평민, 집정관이라는 삼권분립의 권력 지형은 제정 시대에 들어서면서 원로원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황제와 군대' 양대 권력으로 재편되었다.


신흥 권력 군대의 파워는 황제에게 잠재적 위협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력한 우호 세력이 되었다.

병사들이 생사고락을 같이 한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반면에 병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황제는 늘 암살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황제들은 춥고 불편한 변방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고, 전시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안장에 앉았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음산한 황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황제들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최고 리더의 전쟁 참여 전통은 공화정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대 집정관의 주요 임무는 최고 사령관이 되어 군대를 통솔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전사할 확률이 높았음에도, 매년 이 극한의 직업에 당선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공화정 시대에 비해 전쟁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황제는 여전히 병사들의 최고 사령관이어야 했고, 전쟁은 황제들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전쟁을 두려워하고 변방을 불편해하는 자는 황제가 될 자격이 한참 부족했다.


다른 시대의 군주들도 군대를 직접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반란이나 혁명의 이름으로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는 초창기였다. 후대의 계승자들은 평화 시기에 변방을 둘러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전시에는 장군들에게 위임하고 궁이나 후방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평화로웠던 재위 기간 중에도 약 10년간 변방 여러 지역을 둘러보며 병사들을 격려하고 전우애를 과시했다.


오현제 중 두 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는 치세의 절반을 로마를 떠나서 군사 활동으로 보냈다. 병사들과 같은 식당을 이용하고 병사들과 함께 걸어서 행군했다. 다키아 전쟁을 직접 지휘하여 큰 승리를 거둔 전사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상당한 시간을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며 보냈다. 명상록도 이 기간 병영 막사에서 집필했다.


전쟁 중에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로마에 단 한 차례도 입성해 보지 못하고 전사한 황제들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황제의 부고는 차기 최고 사령관을 준비하라는 통보일 뿐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능력과 조건만 된다면 누구든 황제 후보자가 될 수 있었다.


황제를 지칭하는 Imperor(임페러)는 공화정 시대 최고 사령관인 Imperator(임페라토르)에서 유래되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후에도 황제들은 공화정 시대 집정관의 모습으로 군대를 통솔하고 몸소 전쟁에 참여했다.

군주가 아닌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역할 수행은 황제의 기본 책무이자 로마 시민들과 병사들의 거부할 수 없는 요구였다.

조선의 왕들 중 태조 이성계 이후 갑옷을 입고 변방을 방문한 왕은 몇 명이나 될까? 심각한 두 번의 국가 위기 때는 국가 최고 리더라는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오히려 왕의 칼날은 내부를 향했다. 복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나라가 외세에 완전히 넘어갔을 때에도 왕의 갑옷과 칼은 창고에서 썩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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