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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요하면서도 깊은 나날

그와 함께한 여정, 6개월의 시간

by 담서제미

밤하늘에 별이 차츰차츰 빛을 잃어가는 새벽녘, 나는 조용히 앉아 코발트블루 수첩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금빛 왕자가 남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의 눈빛, 그의 말, 그가 만났던 사람들. 나는 그와 함께 21개의 별을 건너왔다.


22번째 별을 가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동안 지나왔던 길을 뒤돌아본다. 그가 예순의 나에게 온 지 6개월. 가슴 한편에 별나무 하나가 심어진 것처럼 나는 그를 품고 살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인생의 가장 깊은 변화는 조용히 스며든 작은 존재로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던 것처럼 나는 그 존재와 매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결코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게 너무 많은 걸 주고 있었다.


허영쟁이를 통해 나는 인정받고 싶어 하던 내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았고, 사업가의 별에서 명예와 숫자에 갇혀 진정으로 봐야 될 것을 보지 못했던 나를 보았다.


지리학자의 별에서는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의 소중함을 배웠고, 여우와 만남은 길들인다는 것에 들어 있는 책임과 마음으로 본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새겼다.


그를 만나기 전, 퇴직 후 나름대로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다고 여기며 자족하고 있었다.


일은 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가르마를 잘 타며 살고 있다 여겼다. 그런 내게 어린 왕자는 물었다.


"너는 그 별에서 행복했어?"

"왜 그렇게 계속 바쁘게 살아?"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낯설고 아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그가 나에게 던진 그 물음들이 나를 다시 인간답게 만들어준 눈에 보이지 않은 씨앗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때때로 내 안에 들어와 많은 것을 바꿨다.


그와 함께 한 여정이, 그저 단순히 정류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 삶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비를 맞으며 맨발로 황톳길을 걷던 날, 조르바 댄스를 추고 있는 내 안에서 그를 느꼈고, 뉴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내 옆에서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예순의 나는 그 이상함 속에서 살아왔다. 지혜롭기를 늘 갈망하지만 사실은 자주 잊고 살았다. 그런 내게 어린 왕자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다정하게 말하는 법, 조용히 기다리는 법, 천천히 듣는 법,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였다. 6개월 동안 나는 그와 함께 걸었다. 그와 함께 별을 보았고, 장미를 생각했으며 여우의 눈동자를 기억했다. 그는 내 안에 침묵의 공간을 만들었다.


여전히 복잡했던 내 마음에 단순한 기쁨을 심어주었고, 내 일상에 느림이라는 여백을 선물했다. 이제 그와 헤어질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허전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진짜 소중한 것은 마음에 남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그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


이 새벽, 그가 나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처음 나에게 온 날, 웃던 모습, 나에게 던진 질문. 그것들이 얼마나 내 삶을 흔들었는지 다 담을 순 없지만, 아제 조금은 더 따뜻하게, 조금은 더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안다.


그와 함께 걸어온 지난 6개월.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하면서도 깊은 나날이었다. 그 정거장이 있었기에 나는 22번째 별로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어린 왕자는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게 말하고 있다.

"어떤 동행은 짧은 시간에도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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