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것에는 책임이 있다.
이별은 지금도 여전히 서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보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은 숱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어린 왕자가 작별을 고하던 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여우의 모습에는 어릴 적 내가 있었다.
"널 길들여서 미안해."
"괜찮아, 나는 네 덕분에 밀밭의 색깔이 달라졌거든."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든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 관계는 찰나일지라도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빛깔을 남긴다.
머릿속 세상이 글이 되어 나오지 못할 때, 가슴 가득 찬 이별의 아픔을 표현할 단어조차 찾지 못할 때, 방황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을 때, 운전대를 잡은 손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 언어에 갇혀 더 이상 나오지 못할 때. 그런 때조차도 그 사람이 떠난 자리는 이미 다른 풍경이 된다.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가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여우가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어려서는 잘 몰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표정과 귀에 들리는 언어가 전부라 여겼던 세월도 있었다. 마음의 깊이에 닿지 못한 언어로 상처받고, 오해했던 날들을 숱하게 지나왔다. 이제는 비로소 그 문장의 깊이를 느낀다.
우리는 대부분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겉모습, 가지고 있는 조건, 표정, 숫자...... 마음으로 본다는 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을 보는 일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 속으로 삭이는 눈물, 고독한 영혼까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진실하다.
예순에 다시 만난 여우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마음으로 본 기억을 잃지 말라. 그것이 사랑이고 진짜 삶이다"라고.
그것에는 책임이 들어 있다.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그 인연의 길을 걸어왔다. 그 관계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라는 말의 울림을.
길들임은 사랑이고, 그것은 책임이라는 무게를 동반한 자유였다. 길들여졌다는 건, 그 사람이 내 일상에 들어와 눈물 하나, 웃음 하나, 작은 손짓 하나에도 내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꼭 옆에 있지 않아도 돼. 꼭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돼. 단지 내가 네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책임이야" 여우가 말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별은 누군가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내 마음에 살아남아있었다. 그 존재가 계속해서 나를 지키고,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게 해주는 것. 그게 책임이었다.
책임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순의 나에게 구십이 다 되신 노모가 건넨 잔소리 같던 말속에는 걱정이 들어 있었고, 남편이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던 매 순간에 신뢰가 있었다.
이제 보인다. 마음으로 본 것들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져 산다. 가족이든, 이성이든, 동료든, 반려동물이든, 식물이든.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다. 책임은 의무가 아니다. 옆에 있든, 떠나 있든, 어디에 있더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다.
여우와 헤어지더라도 여전히 어린 왕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오늘, 문득 내 안에 살아 있는 이들을 되뇌어 본다. 그들이 내게 준 말, 묵묵히 지켜준 시간.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다. 지켜야 할 사랑의 약속처럼. 그것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느끼는 순간, 삶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어린 왕자는 예순의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