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걸어가는 리듬
기차는 쉼 없이 지나갔다. 어린 왕자는 기차역에서 기찻길을 바꾸는 사람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기차들을 바라보았다. 기차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간혹 호기심에 가득한 눈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다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는 있었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듯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빨리 움직여?"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들은 늘 뭔가를 찾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라"
돌이켜보면 내 청춘도 그랬다.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잠시 멈추면 불안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쉬면 뒤처지는 거야."
"앞서가야 살아남아."
그런 말들에 등 떠밀려 가속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속도가 빠르다고 인생의 방향이 올바른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앞칸에서 뒷칸으로, 그다음 역에서 또 다른 역으로. 그들은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럼, 그들은 행복해?"
"글쎄, 대부분은 행복이 다음 역에 있을 거라 믿고 계속 이동하지."
그것은 젊은 시절, 내 모습이었다. 나도 그랬다. 어딘가에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 여기며 계속 달렸다. 다음 승진, 다음 여행, 다음 성과. 늘 다음을 바라보며 지금을 외면했다. 내 삶은 늘 기차를 타고 있었다. 그 길 끝에서 발견한 건 왜 달렸는지 잊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바쁘다는 것은 나를 마주하지 않기 위한 핑계였는지도 몰랐다.
천둥 치듯 우르릉거리며 기차가 지나갔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바쁘기만 해?"
"바쁨이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기 때문이야."
나는 정말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지금 삶의 어디에 서 있는가?
내가 달려온 이 길, 그것이 내 방향이었을까? 혹시 나는 목적지라는 말에 갇혀 과정을 놓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길을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건 무언가를 숨기는 데 가장 효과적인 가면일지도. 그 가면 뒤에 있는 나는 누구였을까?
무엇이든 빠름이 자랑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이룬 것들이 성공이라 여겼고, 느림은 뒤처짐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천천히 걷는 동안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길을 걸으며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 모든 게 삶의 본질이었다.
기차는 쉴 새 없이 지나갔다. 그것은 회전목마였다.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그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어차피 삶은 종착지가 아니라 수많은 모순들이 서로 조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어린 왕자는 기찻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따르며 그가 가는 길을 생각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왕자가 내게 속삭였다.
"나는 기차를 타지 않아도 돼. 걷는 게 더 좋아. 걸으면서 바람도 맞고, 별도 보고, 꽃도 만날 수 있으니까."
그 말은 깊고 묵직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우를 마음에 품은 채 자신을 기다리는 꽃을 향해 천천히, 확실히 걸어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장 느리지만 가장 정확하게 걷는 그 작은 뒷모습. 그는 길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며 이제 나는 기차에서 내리기로 했다. 길을 잃더라도 천천히 걷는 동안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었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걸어가는 리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