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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그를 만난 건 필연

by 담서제미

7월 28일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주간 런던과 파리로 떠나기 전 7개월간 내 삶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었던 어린 왕자를 그의 별로 떠나보냈다. 그는 그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길 위에 섰다. 여행을 떠나기 전 월, 목, 일주일에 2회 연재하던 '예순에 만난 어린 왕자'를 미리 써서 예약발행을 해 두었다.


이 글 역시 런던으로 떠나기 전, 써서 예약발행을 해 놓은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다시 그와 처음부터 함께 할 것이다. 그동안 그와 만난 글을 올린 것들은 초고다. 마음이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그와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마도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 쓴 글들을 읽으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스스로 자책할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나기 전부터 나는 연금술사가 되리라. 나에게 찾아온, 내가 찾아간 어린 왕자를 쓴 글을 깎고 다듬고 연마하여 그의 별 B612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하리라. 그가 나에게 온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필연과 필연이 얽힌. 어린 왕자와 그를 불러 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를 2025년에 다시 만나 건.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열한 살이었다. 망토를 두르고 있는 어린 왕자의 모습은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내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 귀퉁이 의자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인다. 그때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하늘의 별은 멀리 있었고 생활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가 다시 나를 찾아온 건 예순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삶의 여백이 생기기 시작한. 그는 천천히,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오래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인연처럼, 그는 나를 길들였다.


그는 예순의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했고, 회한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나는 그를 통해 기다리는 법, 사랑하는 법, 책임지는 법, 떠나보내는 법을 하나씩 다시 배우게 되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그 한 줄의 문장을 나는 여전히 마음에 새기며 길을 나선다.


이제는 수시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 우물이 그리운 날이면 기억 속 도르래를 감아 그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을 끌어올린다.


그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잃은 것보다 사랑으로 남은 것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의 길 위를 동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장미를 만나러 가고, 다른 여우와 길들여지는 중일지도.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삶에도 그 아이가 한 발짝 다가가길 바란다. 별을 올려다보며 웃을 수 있는 넉넉함, 보이지 않아도 소중한 것을 믿는 마음, 한 송이 꽃에도 책임을 다하는 그 하루가 당신의 등불이 되길.


우리는 사는 동안 한 번쯤은 어린 왕자를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은 나를, 우리를 더 다정하게,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사람답게 한다.


오늘 밤하늘에서 별 하나를 찾아보라. 그 안에 당신을 길들인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가 만난 그의 이야기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시 시작하리라. 어쩌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또 다른 시선으로 와 있을 지도.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써 놓은 이 글을, 여행이 끝나고 난 후 돌아와서 읽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예약발행을 해 놓고 떠나는 이 순간, 런던과 파리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3주 후 내가 궁금하다.


내 손에는 어린 왕자 영어 필사본 책과 만년필 두개 들려있다. 3주 간 여행길에 동행할.


공지) 8월 14일 목요일 글은 쉽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 8월 17일입니다. 어쩌면 다음 글을 8월 18일 시작할 지 아니면 그 이후가 될 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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