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 왕자와 함께한 여행길

어떤 글을 쓸 것인가

by 담서제미

21일간의 여행이 끝났다. 파리 드골공항에서 집까지 장장 18시간. 그 시간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4일째. 나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다. 시차에 적응이 되지 않은 몸과 마음은 일상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이 끝난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 하나.

"어떤 글을 쓸 것인가."였다. 그동안 내내 나를 괴롭힌 그 원초적인 고민은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더 선명해졌다.


여행지에서도 늘 책과 함께 했다. '따라 쓰기로 만나는 영어 필사의 힘 어린 왕자'를 인천공항, 파리드골공항, 런던의 카페, 공원, 파리의 숙소,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도 썼다. 그 순간마다 어린 왕자는 내 곁에 있었다.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한 런던 교외에 있는 노팅힐 서점에서도 나를 잡아끈 것은 '어린 왕자'였다. 서점에 진열된 그를 발견한 순간, 반가움에 덥석 안았다. 표지를 손 끝으로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너는 어디에 있든 결국 나와 함께하는구나."


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여행과 글쓰기가 닮았다는 것이었다. 여행이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글쓰기 또한 나를 떠나 타인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노팅힐 서점 옆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어린 왕자가 내게 물었다.

"네가 쓰려는 글은 무엇이고,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어떤 것이야."


여행 중, 풍경과 사람들 틈에서도 종종 고독이 찾아왔다. 런던외곽의 스톤헨지, 파리의 노트르담 앞의 군중 속에서, 센강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유람선을 보며, 나는 이유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그때 나에게 말은 건 이도 어린 왕자였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내 고독도 어쩌면 글쓰기라는 우물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글쓰기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은 어쩌면 그 고독을 글로 길어 올려야 된다는 또 다른 점검일지도.


여행의 빛은 점점 사라져 가지만 여행 중 필사한 문장들과 그때 감정은 더 깊이 남아 있다. 글쓰기는 내가 만난 풍경과 감정을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길이었다. 여행의 기억은 희미해지겠지만 글로 옮겨 적는 순간 그것은 영원이 된다.


어린 왕자가 내 곁에서 속삭인다.

"네가 길들인 문장에 대해 책임져야 해."

그 말은 글을 쓰는 나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다가온다. 내가 길들인 언어와 문장, 내가 길들인 나 자신, 그 모든 것에 책임지는 글쓰기.


런던의 서점에서, 파리에 센강에서, 숙소에서 어린 왕자는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는 무엇을 쓰고 싶어. 어떤 글을."

나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것.


여행은 끝났지만 글의 여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여전히 질문하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어쩌면 내가 쓰려는 글은 정답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질문을 품는 글일지도 모른다.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숙명 같은 갈망.


나는 오늘도 내 놀이터에서 그 갈망 앞에 앉아 있다. 어린 왕자와 나란히 앉아, 낯선 풍경 속에서 길어 올린 마음을 단어로 빚어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