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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흐르는 곳

노팅힐서점, 그곳에 어린 왕쟈가 있었다.

by 담서제미

"다른 일정은 변경할 수 있지만 노팅힐서점만은 꼭 가야 돼."


런던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 마음은 이미 노팅힐에 가 있었다. 영화, 노팅힐 속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그들이 만난 바로 그 서점. 그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런던 여행 3일째, 대영박물관 일정을 서둘러 끝내고 노팅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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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1979년 여행 전문 서점 트래블북숍으로 시작한 이 서점은 영화 노팅힐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졌다. 평범하고 소박한 서점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파스텔톤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앞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이 냄새와 은은한 향이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좁은 통로에 놀랐다.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 양옆으로는 빽빽이 꽂힌 책들이 기다란 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서점 안쪽은 아늑한 굴처럼 느껴졌다. 천장에는 오래된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책 위에 내려앉아 활자들이 햇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책장에는 세계 각국의 소설과 시집, 여행서, 그림책들이 층층이 꽂혀 있었다. 손때 묻은 책장들은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The Travel Bookshoop. Books are humanity in print"


서점 한쪽 벽면에 적혀 있는 글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 문장 중에 "Books are humanity in print" 를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


"책은 인간이 남긴 가장 오래된 대화."


그 문장을 받아들인 순간 책 속에 활자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건네며,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노팅힐의 책들은 그 오래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책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세대를 넘어 나누는 대화였다.


나는 그곳 서점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다. 서점 진열대 바로 앞 중앙에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영어판 어린 왕자가 있었다. 책을 집어 들자 여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너는 네 장미꽃을 길들였기 때문에 네 장미꽃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장미가 된 거야."


그 순간, 여행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네게도 그런 장미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처럼 다가온 공간, 우연처럼 스친 책이 내 마음에 닿는 순간 인연이 되고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영화 속 광경이 아닌 직접 찾아간 노팅힐 서점은 기억과 시간이 쌓인 인연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린 왕자 영문판 한 권과 작은 에코백 하나를 샀다. 나에게는 세상 어떤 명품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명품이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노팅힐 서점에서 내가 산 건 단지 책과 가방이 아니라, 인연을 담은 나만의 명품이었다. 어린 왕자는 그저 그런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인연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었다. 서점을 나서는 순간, 소음조차 따뜻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노팅힐 서점을 나서며 나는 에코백 속에 어린 왕자 책을 집어넣었다. 진짜 멋진 건, 마음에 아름다운 기억이 하나씩 더해지며 완성되어 가는 것이었다. 보물처럼 가슴에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왕실소유 공원인 켄싱턴 가든스 공원을 찾아 의자에 앉았다.


후두득 빗방울소리에 하늘을 보니 어린 왕자가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노팅힐 서점은 내게 영화 속에 등장한 책방이 아니라, 인연을 가르쳐 준 공간이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삶에 스며드는 것이 바로 인연이라는 것을. (이어서, 파리의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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