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하자는 말이 결국 무대가 된다.
“언니, 11월 13일 시간 되시죠.”
"가만있어봐. 그날 별다른 일정은 없는데 왜에."
"그럼 우리 해금 공연해요."
작년부터 국악원에서 해금을 함께 하고 있는 동생의 목소리는 이미 약속을 해 놓은 사람의 말투였다. "시간 어떠세요"가 아닌, "되시죠"라는 것은 '언니는 할 거야'라는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지난 10월 축제 무대에 섰던 짧은 경험 이후, 우리는 아주 조금씩 내년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에 서는 일이 특별한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 곡을 온전히 끝까지 연주해 내는 '일상의 연습'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연습 중이다. 서툴게 시작하던 음들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하자, 그냥 하자’는 말은 단순한 충동이나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은 연습이라는 고독한 공간에서 쌓아 올리는 하루하루의 결심이자, 다음 날 손에 닿을 음표 하나하나에 대한 진심 어린 약속이다.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 있는 날 조명 아래서, 해금의 줄을 고르고, 소리가 제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활을 반복해 당기는 시간들. 완벽하게 연주할 능력이 아직 부족할지라도, 연습을 멈추는 순간 기회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서로 틀린 음을 잡아주고, 서로를 다독인다. "소리가 갈수록 좋아지네." "잘한다. 잘해." 그 진솔한 말들이 쌓여서, 든든한 신뢰로 바뀐다. 불안은 연습으로 단단하게 다져지고, 손끝의 떨림은 반복으로 굳건해진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할까 말까를 저울질하며 소모하는 시간은 얼마나 공허한가.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활을 당기고 줄을 걸어 연주하면, 우리가 얻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부족함, 서로의 음을 맞춰가는 섬세한 조율, 연습실에서 터지는 소박한 웃음들이 전부 귀한 선물이다.
우리는 이미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연주를 대하는 태도와 서로를 향한 굳건한 믿음이다. 연습 중인 지금, 나는 더 자주 실수를 한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성장의 발자국이다.
실수 뒤에 남는 악보 위의 메모들, 발끝에서 느껴지는 리듬, 손끝으로 전해지는 활의 감촉.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우리가 무대에서 보여줄 아름다운 연주를 만드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나는 오늘도 악보를 펴고, 활을 든다. 완벽함을 욕심내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떨림과 실수와 조율이 없다면, ‘하자’는 결심도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것이다. 기회란 미래의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우연이 아니라, 지금의 연습들이 모여 완성하는 필연이라는 것을. 우리의 무대는 이미 이 연습실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연습이 결국 우리를 무대로 데려갈 거라는 것을. 기회는 미래의 어느 한순간에 도착하는 우연이 아니라, 지금의 연습들이 모여 만든 필연이라는 것을.
<깨달음 한 줄>
망설이는 시간에 연습을 더하라. 그러면 '하자'는 말이 결국 무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