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과하면 탈이 난다

마시기 전에는 몰랐다.

by 담서제미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난다는 말을, 우리는 늘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겪어내는 것은 참 다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과 약속은 그 차이를 여지없이 보여준 하루였다.


먼저 레드와인이 한 잔씩 돌았다. 은은하게 찰랑이는 와인 빛 깊은 색이 잔에 고이는 모습만으로도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올해 이런저런 일들을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했다. 화이트와인이 뒤이어 따라왔다. 입안에 퍼지는 산뜻한 향이 그날 밤을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들어줬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딱 석 잔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늘 ‘조금 더’라는 말에서 시작된다. “이왕 나온 김에,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더?” 이 말은 어째서 늘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걸까.


그렇게 우리는 초저녁, 한적한 바에 들어섰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음악은 적당히 조용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어차피 마시자고 작정하며 들어온 자리였다. 그런데 분위기까지 받쳐주니 역시나 한 잔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처음에는 칵테일 한 잔씩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마시다 보면 더 마시게 되어 있으니 병으로 시키자 했다. 딱 한병 만. 어느새 병이 한 병에서 두 병으로 늘어났다. 마실 때는 몰랐다. 기분이 좋고 대화가 살아 있으니 가벼운 취기도 즐거움의 일부였다.


그런데 늘 그렇듯, 즐거움은 그날 밤에 끝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과하게 누리면, 그 대가가 다음날 찾아온다는 걸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비로소 전날의 과했던 것을 깨달았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속은 들끓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물 한 모금 삼키기도 버거운 하루. 세상 모든 소리가 다 나를 괴롭혔다.


후배들이 보내온 “우리 어제 진짜 재밌었어요” "얼굴 보니 좋았어요"라는 메시지가 왠지 미안하기까지 했다.


거울 속의 나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는 우아한 모습이었는데, 아침에 거울 속 나는 세상의 무게와 숙취가 한꺼번에 내려앉은 기진맥진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몸은 정직해진다는 것이다. 밤의 방종을 낮의 몸이 그대로 계산해 돌려준다.


그래도 신기하다. 매번 이 고통을 겪고 나면,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웃음 속에서 흐르는 그 한 잔의 온기를 다시 갈망하게 된다.


우리가 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술이 우리 시간 속에 들어와 웃음을 만들고 마음을 말랑말랑 부드럽게 풀어준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도 적당해야 한다. 적당히 마신 기분 좋은 저녁과 과하게 마신 뒤, 맞이한 아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얇은 차이를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오늘은 온몸으로 다시 배운 셈이다.


나는 술 마신 다음 날 오후 늦게에서야 전날밤의 즐거움과 다음 날 고통을 합쳐 하나의 결론을 만들었다.


<깨달음 한 줄>

기억하고 싶은 밤은 적당히 마셔야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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