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오후 1시 40분. EBS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몇 시간째 글 속에 파 묻혀 있었다. 잠깐 고개를 들어 바라본 거실. 폴딩도어 너머로 스며든 해그림자가 거실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 빛이 내 눈길을 잡아당긴 건, 소리 없이,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 흘러들어온 듯한 그 느낌 때문이었다. 거실 바닥에 만들어낸 그림자가 어찌나 선명하고 조용한지, 그 순간 문득 나도 모르게 마음에 빗장이 스르르 열렸다.
폴딩도어의 프레임이 만들어낸 선과 그 사이를 흐르는 빛의 면이 거실을 갤러리로 만들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추상화였다. 선과 면, 어둠과 밝음이 서로를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은 채, 묵묵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고요히 그 속으로 들어갔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너무나 선명한 공간 속으로. 오래 보고 있으니 선명하던 경계가 어느 순간 무너져 내렸다. 빛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고, 어둠이 더 어두울 수 있는 것은 빛이 있기 때문이었다. 둘은 서로 다른 영역 속에 있으면서도 굳건하게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오후 3시. 해 그림자는 이제 거실 더 깊숙이까지 들어왔다.
오후 5시.
빛이 들어오고, 그림자가 물러난 자리에는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아마 그것은 초겨울 햇살이 가진 마지막 온기였을 것이다. 겨울이 완전히 스며들기 전까지, 계절은 이렇게 작은 흔적을 여기저기 남기며 우리의 일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 쓰던 문장들, 머리 위로 떠다니던 생각들, 해야 할 일과 지나간 일들, 그 모든 층위들이 잠시 멈춰 섰다. 눈앞의 빛과 그림자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고, 계속 나아가야 하며, 계속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흐르는 시간조차도 종종 놓쳐버린다. 그런데 이 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마치 ‘멈춰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초겨울의 낮은 해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쪽으로 기울기 전까지 천천히 집 안을 거닐다가, 조용히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 이동의 흔적을 나는 우연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연은 내 마음속 어디엔가 작은 파장을 남겼다.
문득 깨달았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있어 빛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다시 글 속으로 돌아왔다. 그 장면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머물렀다. '아, 이 느낌을 글로 쓰자' 빛이 스며든 곳의 온도, 그림자가 남긴 결, 그 위에서 흔들리던 먼지 한 알까지도 생생하게.
글을 쓰는 일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선 하나를 긋고, 면을 채우고, 때로는 공백을 남겨두며, 밝음과 어둠을 함께 담아내는 조형 작업. 그때 비로소 한 문장이 그림이 되고, 한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게 되는 것처럼.
거실 깊숙이 들어온 빛이 나에게 이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분주한 하루와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잠시 멈춰 바라보기만 한다면 계절은 언제나 마음속에 풍요한 하루를 내어준다는 것.
나는 다시 EBS의 음악을 들으며 키보드를 눌렀다. 창밖의 빛이 조금씩 이동하며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변화는 아주 미세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놓칠 만큼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 내가 오래 찾던 감성이 숨어 있었다.
빛이 만들어낸 추상화 같은 오후, 그 장면은 오늘의 문장을 끌어내기 위한 가장 깊은 영감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며 다시 한번 마음의 중심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문장 하나, 그것은 다정한 증거였다.
<깨달음 한 줄>
그림자는 빛이 머물렀다는 가장 다정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