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보다 사유

선물 받은 연필

by 담서제미

연필선물을 받았다. 수영장 여자 탈의실에서 "저, 연필 가져왔어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사용한 연필이래요." 라며 83년생 그녀가 나에게 연필을 내밀었다.


처음 83년생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 나는 83학번인데. 내가 대학 1학년 때 태어났구나." 우린 서로 웃었다.


수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가방 속에서 연필을 꺼냈다. 비닐을 벗기고 연필을 노트북 앞에 세워놓았다. 잠시 바라보았다.


나무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몸통, 아직 한 번도 종이를 만나지 않은 끝. 칼을 들어 연필심을 깎으려고 한 자루를 집었다. 손에 쥔 순간, 왜 연필일까. 문득 연필이 내 사유 속으로 들어왔다.


요즘 글은 너무 쉽게 써진다. 원고지에 꾹꾹 눌러쓸 필요도 없다. 노트북이 아니더라도, 핸드폰만 있어도 어디서든 쓸 수 있다. 문장도 고치고 싶으면 바로 수정하거나 삭제하면 된다. 흔적도, 망설임도 남지 않는다. 화면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연필은 다르다.
연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한다.


연필로 쓴 글은 언제든 지워질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솔직해진다. 틀릴까 봐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생각하면 된다.


연필은 한 번 적은 생각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지금의 너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조용히 기록해 줄 뿐이다.


연필은 느리다. 그 느림 속에는 사유가 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눌러쓰는 동안, 생각은 앞서 가지 못한다. 손이 멈추면 마음도 멈춘다. 그래서 문장은 자연스레 생각을 따라오게 된다.


연필은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서두르는 문장을 붙잡아 세우고, 말이 되기 전에 생각이 되었는지 묻게 한다. 그 느림은 귀찮음이 아니라, 생각을 깊게 만드는 장치다.


연필에는 손의 힘이 남는다. 기쁜 문장은 가볍게, 아픈 문장은 깊게 눌린다. 힘을 주어 쓴 단어는 종이 위에 자국을 남기고, 망설이며 쓴 문장은 연필선이 여러 겹 겹쳐진다.


글씨는 일정하지 않고, 문장은 숨결을 품는다. 연필로 쓴 글에는 작성자의 그날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래서 연필의 글은 읽히기보다 느껴진다.


“나는 연필로 글을 쓴다.
그래야 생각이 손을 따라 천천히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이 했던 말이다. 그는 '분노의 포도' 집필 당시 Blackwing 연필을 수십 자루씩 깎아 사용하였다고 한다. 연필은 그에게 노동과 삶을 기록하는 도구였다.


연필애호가였던 폴 오스터는 “연필로 쓰는 것은 생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라고 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 년의 고독' 초고는 연필로 수없이 고쳐 쓴 원고였다. 그는 말했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지우면서 남는 것이다.”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는 연필로 문장을 시작한다. 잘못된 문장은 지우면 되니까.”라고 했다.


그의 간결한 문체의 비밀은 연필로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연필을 사용했다는 말은, 결국 이런 뜻이 아닐까. 위대한 문장도 처음에는 미완의 생각이었고, 수없이 지워지고 고쳐지며 살아남은 문장만이 책 속에 남았다는 사실. 완성된 문학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고백은 아닐까.


여전히 노트북에 세워 놓은 연필이 나를 보고 있다. 당장 무엇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은 생각만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잘 쓰지 않아도, 빨리 쓰지 않아도, 지금의 마음으로 시작해도 된다는 위로 같았다.


오늘은 연필을 깎지 않기로 했다. 연필이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울 용기가 있나요.

다시 쓸 마음이 있나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사랑할 수 있나요.


불현듯 만년필과 함께 오래오래 이 연필을 사랑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깨달음 한 줄>
완성된 문장을 꿈꾸기보다, 지워도 괜찮은 생각을 품을 때 비로소 글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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