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문정희 시인의 〈사람이 온다는 건〉을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곤 한다. 이 문장이 더 이상 시 속 문장이 아니라, 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한 사람의 삶을 따라 걷고 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웃고, 울며 함께 걷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삶, 여전히 지금, 그 자리에서 호흡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그녀의 말과 침묵, 기억 속으로 들어갈수록 '한 사람이 온다'는 말의 무게를 느낀다.
글을 쓰면서 내내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건 아주 오래전 꿈이었다. 너무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영화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나는 바닷가에 서 있었다. 파도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잔잔히 흐르고,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 몸은 바람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물결치 듯 움직였다.
승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춰 본 적도 없었다. 하얀 장삼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북소리 대신 파도의 리듬이 발끝을 두드렸다.
그때 내 곁에 한복을 입은 분이 서 계셨다. 그분은 자신을 나에게 스승이라 소개했다.
“네가 내 뒤를 이을 제자다.”
꿈속에서 나는 놀라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이제야 확인받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한동안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꿈이 너무 선명했다. '이건 뭐지' 왜 하필 승무일까.
그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승무’라는 춤을 찾아보았다. 동영상 속에서 춤추는 이들은 모두 무언의 시간을 안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절제와 해방, 고요와 격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춤. 삶의 한복판에서 울지 못한 울음과 말하지 못한 기도를 대신 전하는 듯한 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꿈이 예지였는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인연의 그림자였는지.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꿈과 닿아 있는 일을 하고 있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한 번도 계획한 적 없는 자리에서.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이 오면서 그녀의 일생이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삶 속에는 춤이 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삶은 무대 위다. 그 춤, 한가운데에는 승무가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준비되었느냐 묻지 않았다. 가능하냐 따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다가와 자리를 차지했다.
인연은 늘 그렇게 왔다. 꿈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이름을 달고.
어쩌면 오래전 그날 꿈속 바닷가에서 췄던 승무는 춤이 아니라 질문이 아니었을까?
“너는 이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느냐”는.
지금,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내 삶의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일이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춤을 추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만의 승무를.
<깨달음 한 줄>
한 사람이 온다는 건, 내 삶의 리듬이 바뀌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