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영이 준 가르침
"나 절대 못해."
강사가 배영을 하자고 말을 한 순간, '어떻게 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두려웠다.
수영장 구석지에서 발끝으로 물을 툭툭 건드리며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으악, 안 돼, 안 돼."
자유형은 그나마 괜찮았다. 앞이 보였고, 바닥이 보였고, 옆 레인에서 누가 지나가는지도 보였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할 만했다. 숨이 가빠지면 고개를 들 수 있었고, 불안해지면 멈출 수도 있었다. 내 선택지가 남아 있다는 느낌이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배영은 전혀 달랐다. 등을 대고 눕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눈에 들어오는 건 수영장 천장과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형광등뿐이었다. 바닥은 사라졌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나에게 늘 두려움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조절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으면 불안해졌다.
“힘을 빼고 누워보세요.”
강사는 너무 쉽게 말을 했지만, 그 한마디에 온몸이 굳었다. 누운다는 건 물에게 등을 맡긴다는 뜻이었고, 나에게 그건 거의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혹시 이대로 가라앉아 버리면 어쩌지, 숨이 막히면 어쩌지,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어쩌지'. 머릿속은 온통 '어쩌지'로 가득 찼다.
힘을 빼라고 하면 할수록 온몸에 힘을 줬다. 어깨에, 목에, 허리에, 심지어 발끝까지. 그럴수록 몸은 더 무거워졌고, 물은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사가 등을 받쳐주지 않으면 나는 금세 허우적거렸다. 물 위에 눕는다는 건 휴식이 아니라 항복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저는 아무래도 배영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강사에게 말했다. 그 말은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강사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재촉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때가 되면 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또다시 시도했다. 무서워도 물에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강사가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온몸에 조금씩 힘을 빼려고 애썼다. '떨어지면 어때'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그 짧은 순간,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라앉지도 않았고, 뒤집히지도 않았다. 물은 조용히 나를 받치고 있었고, 천장의 불빛은 그대로였다. 나는 물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신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지금 떠 있다고?’ 확인이라도 하듯 일부러 몸의 힘을 조금 풀어봤다. 그러자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발바닥에 단단한 감촉이 전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닥을 딛고,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섰다.
그때 알았다. 가라앉아도 끝이 아니라는 걸. 물속에도 바닥은 있고, 나는 다시 설 수 있다는 걸.
그 깨달음은 생각보다 컸다. 배영이 갑자기 쉬워진 것도 아니었고, 물이 단번에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움의 성질이 바뀌었다. 이전의 두려움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면, 이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자신감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배영이 재밌어졌다. 여전히 천장은 낯설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물이 무섭지 않았다. 가라앉으면 일어서면 되고, 실패해도, 물을 마셔도, 잠깐 허우적거려도 괜찮았다. 나는 이미 한 번, 바닥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니까.
수영 배영에서 배운 깨달음은 수영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웠던 순간들, 등을 맡겨야 했던 관계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늘 온몸에 힘을 주던 나. 나는 그때마다 더 빨리 지쳤고, 더 깊이 가라앉았다. 수영장에서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힘을 빼는 법, 가라앉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누워도 괜찮고, 가라앉아도 괜찮았다. 바닥은 늘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건 수영장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도 적용이 되는 나름대로 진리였다.
<깨달음 한 줄>
두려움은 가라앉는 데 있지 않고,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