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흐려지자 마음이 보였다

안과 검진을 받으며

by 담서제미

6개월마다 안과 검진을 다닌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을 정기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아직은 삶을 관리할 여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전 9시 30분 진료.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병원 앞의 공기는 늘 비슷하다. 급한 사람과 느린 사람이 뒤섞여 있고, 아픈 사람과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 경계는 종이한장 차이다.


몇 가지 눈 검사가 끝나고, 망막을 보기 위해 산동제를 넣었다. 약이 스며들수록 세상은 서서히 흐려졌다. 가까운 글씨도, 멀리 있는 얼굴도 경계를 잃었다.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고요히 그 시간속에 들어가 있었다.


흐릿해진 시야 대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감각에 집중했다. 편안했다. 그것도 잠시, 그 평정심에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현미경으로 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실금정도였다. 시간이 흐를 수록 실금은 차차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틈으로 변했다.


옆자리에서 평화를 깨드리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 한숨 쉬는 소리, 다리를 떨며 먹잇감을 놀리는 맹수처럼 의료진을 쫓는 눈빛.


“언제 부른대.”

“아이씨, 나 바쁜데.”

짜증섞인 말을 랩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간호사를 발견하자, 짜증섞인 목소리로 "원장님이 어디 가셨어요" 라고 묻는다. 주사와 레이저 치료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답변이 돌아와도, 그 사람은 점점 더 짜증을 냈다. 얼굴에 오만상을 쓰고.


내 고요한 평화는 그렇게, 아주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조그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굳이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인간의 군상일 뿐이라 여겼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말했을 것이다. ' 왜 저래. 이해할 수 없네.' 핏대를 올리며 마음속에서 재판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진다. 다만 한 가지, 상식과 예의가 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조금만 덜 각박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같은 것이라 해 두자.


산동제 탓에 세상은 여전히 흐릿했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분간이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방향감각이 둔한 편인데, 오늘은 더 어지러웠다. 눈뿐 아니라 마음까지 잠시 초점이 나간 느낌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원장님 말했다.
“좋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았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젊을 때는 몰랐다. 인생은 늘 좋아지는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유지된다는 것의 가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병원을 나섰다.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습관처럼 발걸음이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 앞에 서자, 문득 마음이 바뀌었다.


‘눈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걷자.’

나는 방향을 틀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세상은 여전히 흐릿했고, 표정 없는 건물들과 소음은 뭉개진 수채화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흐릿한 세상 속에서도, 몸은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걷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기다림 앞에서 초조해지는 사람도, 고요를 지키려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아직 흐렸지만, 마음은 조금 맑아졌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깨달음 한 줄>
세상이 흐릿할수록, 나는 내 속도로 걷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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