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너머 세상

부모님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by 담서제미

크리스마스 날, 부모님과 함께 장어구이를 먹으러 갔다.


식당 통유리너머에서 함박눈이 소리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호흡으로, 가장 무심한 얼굴로, 식당 밖 풍경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질적인지, 유리 안쪽에 앉아 있는 우리가 잠시 다른 차원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불판 위에서는 장어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기름이 올라오며 작은 불꽃이 튀고, 고소한 냄새가 공기 속에 퍼졌다.


엄마가 불판 위에 장어를 뒤적이자 아버지는 “아직 덜 익었으니 기다려야 해”라며 말리셨다. 두 분의 대화는 늘 그렇듯 느렸고, 서두름이 없었다.


아버지의 손등에는 굵은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고, 어머니의 손은 한겨울 논바닥처럼 잔주름이 촘촘했다. 한때는 나를 업고, 나를 끌고, 나를 안아 올리던 손들이었다. 이제는 그 손들이 서로를 의지하듯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유리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눈은 여전히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아버지가 말하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오니 좋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말이 품고 있는 시간을 생각했다. 예전에는 눈이 오면 출근길이 막히면 어쩌나 그 걱정부터 했다. 하지만 이제 눈은 부모님과 함께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다.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풍경.


장어가 적당히 익자 어머니는 자식들 앞으로 장어를 올려주셨다.
"많이 먹어라."
영원히 변하지 않을 말. 내가 몇 살이 되었든,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부모에게 나는 여전히 먹여야 할 존재다. 육십을 훌쩍 넘긴 딸에게 건네는 그 말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눈물이 날 만큼 다정했다.


나는 천천히 장어를 씹으며 다시 바깥을 보았다. 함박눈은 여전히 소리 없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속도와 불판 위에서 장어가 익어가는 속도, 부모님의 숨결이 흐르는 속도는 모두 달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리듬처럼 어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눈을 붙이듯 눈을 감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어깨를 슬쩍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물을 한 잔 따라주셨다. 말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이. 구십을 바라보는 세월이 만든 묵직한 침묵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마음속 깊이 저장하듯 오래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 평범한 점심이 그리워질 날이 올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창 너머, 눈은 끝내 우리 쪽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우리도 끝내 그 안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식당 안에서, 노릇노릇 익은 장어를 나누어 먹으며 크리스마스 한낮을 보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딸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눈도 참 곱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이 시간도 참 고와요’라고.


<깨달음 한 줄>
행복은 특별한 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시간을 무사히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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