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울 것이 없는 날이 주는 안도

새해는 늘 그렇게 온다

by 담서제미

2026년 1월 1일.

달력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느 날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다는 것, 그 소소한 게으름이 내 새해의 전부였다. 숫자 하나가 넘어갔을 뿐, 세상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새해라는 이름 앞에 괜히 마음을 바삐 세우고,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조급함을 먼저 꺼내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삶은 그리 급하게 방향을 트는 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담담하게 맞이한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떡국을 끓이는 일에 집중했다. 새해의 의식처럼 굳어진 음식이지만, 오늘만큼은 유난히 고요한 마음이었다.


뽀얀 국물 속에서 얇게 썬 떡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김이 오르는 냄비 앞에서 나는 조용히 국자를 저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상징적인 무게보다, 지금 내 앞의 한 그릇을 따뜻하게 비워내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한 숟갈, 또 한 숟갈. 시간도 국물처럼 그렇게 천천히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떡국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올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라는 뉴스가 무색하게, 막상 마주한 바람은 견딜 만했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칠 때마다, 폐부 깊숙이 겨울의 조각들이 들어왔다 조용히 빠져나갔다.


발밑에서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겨울 잎들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 투명한 차가움이 주는 맑음이 세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새해는 늘 시작을 강조하지만, 실제 삶은 이어짐에 가깝다. 어제와 오늘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에 선명한 경계선 따위는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조금씩 바뀔 뿐이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달라지지 않은 평범한 하루를 기꺼이 살아내는 용기가 아닐까. 산책길 위에서 보물찾기 하듯 떠올린 격언 하나가 마음을 다독인다.


“잘 산 하루가 잘 산 인생을 만든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좋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 조금 늦게 일어나도 괜찮고, 따뜻한 떡국을 먹고, 차가운 공기 속을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하루. 그런 하루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나라는 시간을 쌓아야 갈 테니까.


2026년 1월의 첫날이 조용히 저문다. 달라진 게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저녁이다. 새해는 새로워지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만히 확인하라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견딜 만한 추위 속을 걸어온 오늘처럼, 올해도 너무 애쓰지 않으며 살아가기로 한다. 잔잔하게, 나라는 결을 분명하게 지키며.


나의 2026년은 그렇게, 요란한 다짐 대신 고요한 보폭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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