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나무처럼
수요일 밤, 응급실에서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형광등 불빛은 지나치게 밝았고, 그 아래에서 나는 내 몸의 소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들었다. 심장이 뛰는 리듬, 숨이 들고 나는 간격, 그 사이사이에 끼어든 불안.
담담하다 여겼으나 정직하게 그 밑마음을 들여다보면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깔려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큰일이라 했다. 큰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나에게 닿지 않았다. 아무리 건너도 끝이 나지 않을 징검다리가 무수히 놓여 있었다.
입원해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보자는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 날 순환기내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혈압 약만 드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물었다. 어젯밤에 응급실에를 갔는데 "대동맥분리증상이 보이다 멈췄으니 순환기내과를 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의사는 처음부터 다시 CT촬영해 놓은 것을 비롯한 검사해 놓은 자료를 세세하게 살폈다.
"괜찮습니다. 약 꾸준히 드시면 돼요."
그 단어 한 마디에 문장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생각이 과거와 미래로 동시에 흩어진다. 나는 그날, 내가 써 온 문장들과 아직 쓰지 못한 문장들 사이를 오갔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간 나는 자연스럽게 휴지기에 들어갔다. 의도한 멈춤은 아니었다. 몸이 먼저 브레이크를 걸었고, 마음이 뒤늦게 그 신호를 받아들였다.
책상 앞에 앉아 파일을 열어 보았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A4에 12 포인트로 163장이었다.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뿌듯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놀라움이었다.
'12월 초부터 2개월 가까이 참, 많이도 썼구나' 그 분량에 놀랐다. 미친 듯이 썼다는 것 외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계획적으로 밀어붙였다. 매일 숙제하듯이, 아주 모범생처럼 써 내려간 흔적이었다. 쓰겠다고 다짐해서 썼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상황이어서 써진 글이었다.
글자 수를 세어 보았다. 177,616자. 그 안에 들어 있는 시간과 감정이 뜨거웠다. 어떤 날은 문장이 술술 흘렀고, 어떤 날은 한 문장을 붙잡고 한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은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사실은 마음이 먼저 두드려지고 있었다. 나는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에 기대어 하루를 넘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응급실에 다녀온 후 개인 일정이 이어졌다. ‘이 시대의 신중년이 사는 법’의 저자인 더블와아파파님의 북 콘서트도 다녀왔다. 그곳에 가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봐야 할 일정을 맞췄다. 북콘서트의 열기는 뜨거웠다.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 저자가 던지는 문장들이 내 안에서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나 역시 신중년의 중앙에 서 있고, 나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의 열기가 응원처럼 여겨졌다. 좋은 글 벗이 있다는 안도와 긍정에너지가 한꺼번에 들어와 쌓였다.
글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음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문장이 똑똑똑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걷다가, 앉아 있다가, 누워 있다가 문득 문장이 떠올랐다. 적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문장들. 작가에게 휴지기란 멈춤이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는 준비의 시간이라는 것을. 겉으로는 쉼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조용히 다음 호흡을 모으고 있었다.
응급실의 밤 이후 나는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몸은 언제든 신호를 보낼 수 있고, 그 신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이 붙들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글이었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고, 당장 발표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나를 살게 하는 문장들. 그거면 충분했다.
<깨달음 한 줄>
멈췄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삶은 조용히 다음 문장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