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과 대동맥
수요일 오후 4시 40분, 나는 해금을 켜고 있었다. 두 줄 사이를 오가는 활은 숨처럼 고르고, 맥박처럼 일정해야 했다.
중머리의 선율은 느리고 길게 흘렀다. 밖으로 흘러가는 소리. 세상에 들려주는 나의 숨결. 그때, 내 안에서 다른 줄 하나가 끊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통증은 엉덩이 위와 허리 아래로 번지며 몸속을 가르듯 지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활이 내 안의 어떤 관을 긁고 지나간 것처럼.
설사도 없었고,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도 없었다. 통증은 예리하게 온몸을 흔들었다.
'이건 뭐지. 어디가 문제지, 탈이 날만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분명 배탈은 아니었다. 통증이 달랐다.
급히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핏기가 하나 없는 백지처럼 창백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내 몸의 박자를 되찾으려 했다. 해금은 악기가 소리를 멈추면 끝나지만 몸은 내가 멈춘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해금을 등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금은 내 어깨에 닿아 있었고, 내 안의 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통증이 사라지려나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통증의 근원은 무엇일까'
여전히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평소에 아픈 느낌과 전혀 다른 처음 겪어 본 아픔이었다.
오후 5시 40분, 딸이 들어왔다. 이어 남편이 왔다.
병원 응급실, 불빛 아래에서 나는 하나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가 되었다. 피를 뽑고, 소변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복부 CT를 찍는 동안 내 몸은 소리를 잃은 악기처럼 가만히 있었다.
혈압 170, 180. 숫자들은 나 대신 몸의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 염증은 없었고, 장기들도 조용했다. 의사는 담낭의 돌을 말했지만 그건 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었다.
“등이 아픈 적은 없으세요?”
몇 달 전, 이유 없이 계속 아팠던 등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그 통증을 삶의 피로쯤으로 넘겼다. 의사는 CT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내가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내 몸의 악보가 있었다.
“대동맥박리가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멈춘 상태입니다.”
그 말은 내 안의 가장 큰 줄이 이미 한 번 갈라졌었다는 뜻이었다.
해금은 줄이 끊어지면 나는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동맥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조용히 갈라지고, 조용히 멈추고, 조용히 사람을 떠나보낸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죽음은 이미 내 안을 스치고 지나간 뒤였기 때문이다.
‘지금 멈춘 상태라면 된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삶을 다시 잡아당겼다.
의사는 내일 순환기내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목요일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큰 이상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후 내내 잠을 잤다. 마치 오래 묵혀두었던 잠을 한꺼번에 꺼내 내 안에 집어넣듯.
나는 그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또 글을 쓰고, 해금을 켜며 사는 삶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피곤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몸은 부대끼고 있었다. 이번 일은 경고라기보다 권유에 가까웠다.
잠시 쉬어가라고.
이틀 동안, 나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다시 조심스럽게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평생 밖으로 흐르는 소리를 다루며 살았지만, 정작 내 안에서 흐르는 생의 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해금은 한 줄 한 줄 조율해야 하고, 대동맥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삶이란 연주가 아니라 순환이다. 모르고 지나간 시간은 운명이었다.
이제 알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내 삶의 태도가 된다. 이후 삶은 더 천천히, 내 안의 박자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나는 경계에서 돌아와 다시 숨을 고르고 있다. 밖으로 흐르는 소리와 안으로 흐르는 생 사이에서.
<깨달음 한 줄>
밖으로 흐르는 소리를 다듬느라, 안으로 흐르는 생을 놓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