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맛있겠다. 우리 내일 팥죽 먹으러 가자.”
그 말이 시발점이었다. 대단한 약속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닌, 그냥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였다. 일요일 오전, 집 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했다.
남편과 딸이 함께 나섰고, 간 김에 아들까지 합류했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건 이제 일부러 날짜를 잡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작은 외출 하나에도 합류라는 말이 붙는다.
바람 끝은 시렸지만 살을 에일 정도는 아니었다. 견딜 만한 추위였다.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내린 흔적조차 없었고, 응달진 곳에만 듬성듬성 희끗희끗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겨울이 이미 떠나려고 마음을 정한 것처럼, 남기고 갈 것만 남겨둔 풍경이었다. 나는 그 흩어진 눈을 보며, 계절도 사람처럼 미련을 조금씩 덜 어내며 사라지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새알팥죽과 바지락칼국수를 시켜 깍두기와 바로 담은 배추김치에 먹었다. 깍두기에서 막 익기 시작한 시큼한 맛이 났다. 그 맛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숟가락을 들고 첫 입을 뜨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하루가,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일상이 그저 고마웠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지인들과 밥을 먹다가 나이를 묻는 질문에, 내가 웃으며 말했었다.
“저, 나이 많이 먹었어요.”
그때는 진심이었다. 정말 그렇게 느꼈다. 그 나이가 되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낸 것 같고, 이미 늦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 시절의 나는 애기일 뿐이다.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아주 많이 산 것처럼 여겼던 그때는 너무 싱싱한 나이였다.
이상한 일이다. 나이는 늘 지금이 가장 많고, 기억 속의 나는 언제나 더 젊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과거의 자신을 다독이게 된다. 그때는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왜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 없다 단정했을까, 왜 그렇게 스스로를 늙은 사람 취급했을까.
그랬다 할지라도 그때의 나도 그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단지, 지금의 나는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졌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졌을 뿐이다.
팥죽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예전에는 ‘얼마나 남았는가’를 먼저 계산했다면, 이제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더 자주 묻게 된다. 그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할 수 있고, 바람이 차가우면 차갑다고 느끼고, 가족이 모이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나이를 제대로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는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웠고, 중간쯤에서는 나이가 많은 척을 했고, 지금은 나이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의 팥죽이 맛있으면 그걸로 족하고, 가족이 함께 웃으면 그게 삶의 무늬처럼 느껴진다.
오늘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리고 그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괜찮아."
지금 나는 팥죽 한 그릇 앞에서 웃고 있고, 바람은 차지만 견딜 만하고, 인생은 여전히 먹을 만하다.
와, 맛있겠다.
이 말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어쩌면 인생도 별거 없다. 이렇게 가끔, 아무 계획 없이 던진 말 하나가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나이를 바꾸고, 그 나이가 다시 나를 살게 한다.
<깨달음 한 줄>
나는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맛보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