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핀 봄

계절을 밀어 올리는 용기

by 담서제미

창밖의 공기는 여전히 날카로운 송곳 같다. 유리는 그 서슬 퍼런 기운을 겨우 막아내며 하얗게 성에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꺼운 코트 속으로 몸을 웅크린 채, 보도블록 위의 마른 잎처럼 바스러지듯 걸음을 재촉하는 계절.


우리 집 베란다 역시 그 겨울 풍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거였다.


기록적인 폭염이 쏟아지던 지난여름, 베란다는 식물들의 거대한 묘지였다. 특히 내가 아끼던 제라늄은 그 치열했던 태양 아래서 처절하게 무너졌다. 잎은 가장자리부터 타들어 가며 갈색으로 말라붙었고, 단단했던 줄기는 어느 순간 흐물거리는 물집처럼 힘없이 늘어졌다.


물을 주고, 안쓰러운 마음에 선풍기를 돌려주고, 간절함을 담아 이름을 불러보아도 소용없었다. 어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지만, 식물과 작별은 서서히 진행되는 고문이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손쓸 수 없는 무력함. 제라늄은 그렇게 한 줌의 마른 흙만 남긴 채 조용히 내 곁을 떠났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엔 고요한 폐허만이 남았다.


겨울 한복판, 나는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듯 베란다로 나갔다. 텅 빈 화분 속의 흙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죽은 뿌리의 잔해를 털어냈다. 그 과정은 마음속에 엉겨 붙은 미련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한때는 찬란한 꽃을 피웠을 그 뿌리들이 이제는 푸석한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나는 그 자리 위에 새로운 생을 올리기로 했다. 미플러스 멤버 동생들과 같이 제라늄과 다육이를 사러 나섰다.

제라늄 3개, 다육이 3개를 데려다 비워진 자리를 채웠다.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삶이란 결국, 떠나간 것들이 남긴 빈자리에 새로운 남은 것들을 다시 배치하는 끝없는 반복이 아닐까.'

상실은 영원한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심기 위한 필연적인 작업인지도 모른다.


작업을 마치고 일어서려던 찰나, 시선이 옆 화분으로 향했다. 그늘에 가까운 구석진 자리, 겨울 햇살조차 제대로 닿지 않아 존재를 잊고 있었던 보라싸리와 천리향이었다.


“세상에나, 꽃망울을 맺었네.”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내가 먼저 놀라 멈춰 섰다. 보라싸리의 가느다란 줄기 끝에 포도송이처럼 아주 작은, 그러나 야무진 봉오리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그 옆의 천리향 역시 이미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망울을 품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겨울이었다. 창밖엔 여전히 찬 공기가 유리창을 타고 미끄러지며 비명을 지르는데, 이 작은 생명들은 이른 봄의 소식을 제 몸 안에서 빚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말없이 준비해 온 약속 같았다.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침묵의 덩어리.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그 작은 봉오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너희는 지금이 봄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식물들은 세상의 기상 예보를 듣지 않는다. 누군가 정해놓은 개화 시기라는 도표를 참고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기 안의 수액이 차오르는 감각에 집중할 뿐이다.


우리는 늘 때를 따지며 산다. 서른이면 이만큼의 성취를 이루어야 하고, 마흔이면 이 정도의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시간표. 나이에 맞는 꿈, 계절에 맞는 감정, 상황에 맞는 희망. 우리는 타인의 시계에 내 심박수를 맞추려 애쓰느라 정작 내 안의 꽃망울이 언제 맺히는지조차 잊고 산다.


"아직 이르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가두며 얼마나 많은 꽃망울을 피워보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접어버렸던가. 하지만 베란다의 보라싸리는 내게 묻고 있었다. 남들이 겨울이라고 부르는 이 시간이, 어째서 꽃을 준비할 시간이 될 수 없느냐고.


이 작은 식물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들의 시간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한겨울의 칼바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외부의 규칙 대신 자기 안의 계절을 따르는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고집.


문득 여름에 녹아내린 제라늄이 떠올랐다. 만약 그 여름의 상실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이 보라싸리의 꽃망울을 이토록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


실패와 소멸이 있었기에 오늘의 생이 더 고귀하게 다가온다. 어떤 생은 타이밍을 놓쳐 녹아내리고, 어떤 생은 남들보다 앞서 계절을 건너뛴다. 중요한 건 남들 기준이 아니다. 본질은 어떤 풍파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단 한 번은 꽃을 피우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꽃망울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한 식물의 생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용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봄은 달력 위의 숫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믿고 밀어붙이는 용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정해준 시간표가 아니라, 내 영혼이 '지금이야'라고 속삭이는 그 순간을 믿는 마음. 비록 주변이 온통 얼어붙은 얼음판일지라도, 내 안에서 꽃망울을 맺기로 결심했다면 그곳이 바로 봄의 시작점이 된다.


나는 오늘, 조금 이른 봄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은 공기가 춥고, 세상은 여전히 냉기로 가득하며, 나 또한 겨울 속이 있지만 상관없다. 저 보라싸리처럼 나 역시 내 안의 수액을 부지런히 끌어올려 나만의 계절을 만들면 그뿐이다.


창밖에 한겨울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내 마음에는 이미 보랏빛 향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꽃은 이미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보다 단단한 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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