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마주한 2025년의 안부
“태수 씨는 죽기 전까지 통 잠을 못 잤다.”
202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첫 페이지를 넘긴 순간, 문장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지나치게 선명했다. 어디서 본 구절일까. 최근의 독서 목록을 뒤지고 기억의 타래를 풀어보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시감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한 장을 더 넘겼다. 구체적인 묘사와 지독하게 익숙한 문체. 이것은 데자뷔가 아니었다. 이미 내 뇌세포 어딘가에 각인된 정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책장을 확인했다. 그곳엔 방금 산 것과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두께, 그리고 ‘제48회 이상문학상’이라는 금색 글자가 박힌 책이 이미 꽂혀 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2026년의 새로운 문학적 성취를 기대하며 온라인 서점을 서성였던 나는, 정작 1년 전의 시간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아 온 것이다. 작년 초,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그제야 밀물처럼 몰려왔다.
1년이란 시간은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여전히 2025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책 두 권을 거실에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1년의 손때가 묻어 종이 끝이 부드럽게 일어났고, 다른 하나는 갓 인쇄된 잉크 냄새를 풍기며 빳빳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느라, 2025년에 다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나 놓쳐버린 문장들이 나를 붙잡은 것이 아닐까. 태수 씨의 불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작년의 내가 느꼈던 서글픔과 올해의 내가 마주한 당혹감을 동시에 관통했다.
텍스트는 그대로지만 읽는 나는 1년만큼 늙었고, 그만큼 변했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 사이의 여백이 이제야 숨을 쉬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중복’은 낭비가 아니라 ‘심화’였다. 2026년의 수상집을 손에 넣지 못한 아쉬움은 어느새 2025년의 나를 되돌아보는 귀한 기회로 치환되었다.
새로 산 책을 덮지 않았다. 대신 이미 알고 있는 태수 씨의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려갔다. 2026년에 만나는 2025년의 문장들은 작년보다 더 깊고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일은 다시 온라인 서점을 방문할 것이다. 이번에는 눈을 크게 뜨고 ‘2026’이라는 숫자를 반드시 확인하며. 하지만 오늘은, 1년의 시차를 두고 도착한 이 익숙한 위로에 몸을 맡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