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일요일 오후, 부엌은 일상의 소란과 적막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명절연휴기간에 터키여행을 준비 중인 딸아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여행 준비물 살 것이 있어서요."
한참 후, 남편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더니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집안에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레인지 위에는 치킨 스톡과 토마토퓌레, 카레 가루를 섞어 만든 수프가 은은한 향을 풍기며 끓어가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주황색 당근, 짙은 초록을 머금은 브로콜리, 투명한 양파, 빨간색 파프리카의 조각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칼질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닫힌 현관문 너머로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칼질을 하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분명 아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 시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들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환청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던 찰나, 도어록이 해제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실로 들이닥친 것은 남편과 딸, 아들에 뒤이어 환하게 웃고 있는 예비 며느리였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합작한 깜짝 선물이었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을 품에 안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그 아이의 모습에 나는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야."를 연발하고 있었다.
순간, 집 안을 둘러봤다. 주부로서의 본능이 뒤늦게 발동했다. 정리되지 않은 부엌 바닥과 채소 껍질이 굴러다니는 도마가 눈에 들어왔다.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럼 청소라도 깨끗이 하고 근사한 요리라도 준비해 뒀을 텐데.' 며느리를 맞이할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채, 수면잠옷을 입고 식재료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우스웠다.
하지만 예비 며느리의 맑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그런 부질없는 걱정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만약 이 방문이 미리 약속된 것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며, 요란을 떨었을 것이다. 며느리를 맞이하는 기쁨보다 '준비된 완벽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나 자신을 들볶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이 '무방비한 순간'이 나에게는 생애 가장 큰 해방감을 선사했다. 격식을 갖춘 정찬보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채소를 썰다 뛰어 나가 맞이하는 이 소란스럽고 솔직한 조우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잘 닦인 거실 바닥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마주하며 터뜨리는 웃음소리였고, 화려한 식탁 차림보다 귀한 것은 예고 없이 찾아와 준 그 아이의 진심이었다.
"깜짝 선물을 하러 왔어요."라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온기가 채 식지 않은 거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웃고 있었다. 오늘 내가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은 종이상자 속에 담긴 물건이 아니라, 나를 찾아와 준 그 아이 그 자체였다.
결혼을 앞둔 예비 며느리의 첫 방문이 이토록 편안하고 뭉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서로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선물처럼 주고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도마 앞에 섰다. 아직 다 썰지 못한 남은 채소들을 정리하며 나는 자꾸만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냄비 속에서는 아까보다 더 깊은 향을 내며 토마토 카레 수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채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내듯, 우리 가족이라는 커다란 냄비 안에 '며느리'라는 가장 향긋하고 소중한 재료가 더해진 기분이었다.
준비된 환영보다 더 반갑고, 계획된 축하보다 더 감동적인 '불쑥 찾아온 행복'. 오늘 나의 부엌은 세상 그 어떤 일류 레스토랑보다 풍성한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올랐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에 남겨진 그 환한 미소를 되새기며, 나는 오늘 하루가 준 이 뜻밖의 축복을 오래도록 마음속 도마 위에 올려두고 곱씹어 본다. 참으로 고맙고, 참으로 어여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