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믿는다는 것

나를 놓아준다는 것

by 담서제미

처음 수영장을 찾았을 때, 나의 간절한 기도는 단 하나였다.

'제발 물 위에 뜰 수만 있게 해 주세요.'


아주 오래전, 큰마음먹고 수영강습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 해수욕장으로 수련회를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두 팔을 쭉 뻗고 멋지게 물살을 가르는 내 모습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뭐. 두 달이 돼도 뜨기는커녕 킥판만 놓으면 물 안으로 가라앉았다. 물에 대한 공포가 너무 심해 결국 두 달 만에 포기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때 강사는 입버릇처럼 "몸에 힘을 빼세요"라고 외쳤지만, 그 말을 들을수록 내 몸은 마치 화강암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팔은 팔대로 퇴로를 차단하듯 뻣뻣해졌고, 몸통은 잔뜩 움츠러들었으며, 다리는 물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 치느라 온통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를 보호하려던 그 필사적인 힘이 정작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돌덩이가 되었던 셈이다.


그 기억이 남아 있어 이번 도전도 결코 쉽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웬걸, 한 달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자유형으로 물을 가르고 배영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유영한다.


이제는 단순히 뜨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더 매끄럽게 물살을 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이제야 알았다. 물은 나를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내가 힘을 빼기만을 기다려준 든든한 품이었다는 것을.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물을 이기려 드는 대신, 내 몸의 통제권을 잠시 넘겨주어야 했다. 나를 꽉 움켜쥐고 있던 그 지독한 긴장을 툭 내려놓는 순간, 물은 나를 받쳐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삶도 수영과 닮아 있다. 잘해 보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줄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고 뒷걸음질 치게 된다. 글을 쓸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힘'을 주며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있는가.


나는 오늘, 물안경 너머로 일렁이는 푸른빛을 보며 다짐한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생의 파도 앞에서도, 저항하기보다 유연하게 몸을 맡기며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겠노라고.


오늘 그녀는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를 묻힌 채, 풋풋하고 생동감 있는 발걸음으로 내 곁에 머물렀다. 물 위에 뜨지 못해 애를 먹었던 옛 기억을 추억하며, 이제는 자유형과 배영까지 해낸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지 끝에 머무는 바람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참으로 '애쓰는 것'에 익숙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는다. 하지만 내가 배운 진리는 정반대다. 폭풍이 몰아칠 때 내가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내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서가 아니라 바람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길 줄 아는 '유연함' 덕분이었다.


나무 역시 처음에는 힘을 준다. 어린 나무일수록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 있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번개를 맞고 속이 비어가며 하나씩 느끼게 된다. 힘을 빼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신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가 속을 비워 바람의 길을 내어주었듯, 그녀도 몸의 힘을 빼어 물의 길을 내어준 것이다.


"힘을 빼세요."

그 말이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가 된 모양이다. 이제 그녀는 가라앉을까 봐 두려워 발버둥 치던 시간을 지나, 물의 흐름을 타고 나아가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나 역시 비어있는 내 몸통 안으로 바람을 들이고 내보내며, 힘을 뺀 채로 이 자리에 서 있다. 힘을 뺀 나무는 더 높이 자라는 대신 더 깊이 흔들릴 줄 알게 되고, 힘을 뺀 인간은 더 빨리 가는 대신 더 멀리 풍경을 보게 된다.


그녀가 돌아가는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물결을 닮아 유연해 보인다. 다음번 그녀가 물속에 몸을 던질 때는, 저 푸른 물결이 그녀를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동료임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비워낸 나무가 바람을 노래하듯, 힘을 뺀 그녀가 생의 바다를 유유히 항해할 그날을 나는 묵묵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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