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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내가, 60대 나를 찾아왔다 10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해라

by 담서제미

친정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어딜 가든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하라고. 살아오는 동안 그 말의 의미를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눈 진심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하라는 아버지 말씀은 그 장사는 돈으로 계산되지 않고 시간으로 잴 수도 없지만 그 흔적은 기억으로 남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이라는 거였다.


30대, 40대 내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 여행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흘러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기억조차 희미해지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끝에 아버지 말씀이 있었다.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하라는. 어쩌면 내가 30대, 40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2006년 1월 1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 속에는 그때 당시 51살이었던 그녀가 있었다.

KakaoTalk_20241128_060756777.jpg 2006년 1월 16일 오마이뉴스 게재


"관광버스 운전을 하고 싶어요. 구경도 하고 좋아하는 운전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녀가 나에게 했던 첫마디였다. 18년 전에 오십 대인 여자가 관광버스를 운전하고 싶다니. 그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근심 걱정 하나도 없이 평탄하게 살았을 거 같은 맑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은 아니었다. 깊이가 계곡보다 깊었다. 눈 속에 많은 사연이 숨어 있었다.


나는 성취프로그램을 진행하는 5일 동안 그녀를 만났다. 왜 관광버스 운전을 하고 싶은 지 먼저 묻지 않았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의 내면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 그녀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파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어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아가씨들이 많은 거 같은데 내 이야기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털어놓았다.


나이는 51세. 서울에서 여대를 졸업한 그녀는 "너 아니면 죽어도 안 되겠다"는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풍요로웠다. 남편은 더할 나위 없이 자상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다. 아들 둘도 말썽 없이 잘 자랐다.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남편이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큰 아들이 고등학생 때 알았다.


"엄마, 오늘 아빠차 봤어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아빠 차가 거기 주차되어 있던데요.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 그냥 왔어요" 라며 무슨 말인지를 더 할 듯하던 아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랑 결혼했을 때 너 아니면 죽어도 안 되겠다던 남편은 그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했다. 두 말 없이 남편을 보냈다.


전업주부로만 살았던 그녀가 이혼 후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들 둘과 살기 위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이를 악물고 견뎌낸 세월이 십 년이었다. 스물여섯, 스물넷이 된 두 아들이 "저희들을 위한 삶이 아닌 어머니의 인생을 사시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결혼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했던 것이 어리석었어요. 그것을 남편하고 헤어지고 난 후에야 알았어요. 결국 내 인생은 내 것이었는데 소설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처럼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아왔던 거예요. 남편의 틀 안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닥친 불행 앞에서 어떻게 대처를 했겠어요. 주체적인 내 삶을 살았다면 아마 덜 고통스럽게 살았을 거예요"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프로그램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결국에 가서는 피하려고 했던 그 고통보다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고통스럽게 된다]는 스캇펙의 글에서 처럼 고통 자체보다 피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큰 통증을 느껴 본 후에야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남편도 용서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그녀는 말했다.


"관광버스 운전을 하면서 철마다 색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산, 고요와 푹풍을 동시에 안고 있는 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보름달,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싶어요"라고.


51살이 되어 자아 찾기 행진에 나선 그녀를 위해 그날 프로그램실에 있었던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06년 51살이었던 그녀는 2024년인 지금 69세가 되었으리라. 18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다.


나는 믿는다. 그 누구보다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 싸웠던 그녀가 여전히 꿋꿋하게 당당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고.


"젊었을 때는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알지만 나이가 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값진 보석이더라"는 아버지 말씀처럼 , 시간이 지나면 돈도, 명예도, 성공도 다 사라진다. 그에 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난 온기는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때로는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고, 삶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하라는 그 말씀이 여전히 내 가슴을 울린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남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 누군가의 눈빛 속에 스며들었던 기억은 60대가 된 내 인생을 따스하게 비춘다.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며 살다 보면 결국 내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담아, 사람이 남는 장사를 하며 살아간다. 2006년에도 그랬듯이 2024년인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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