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30대, 네가 있어서 60대인 담서제미가 멋지게 살아간다네
새벽부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마음이 자꾸 꼼지락, 꼼지락 오늘은 하루 쉴까? 쉴 이유를 찾았더니 열 가지가 넘었다. '그래, 오늘 하루 쉬자'라 마음을 먹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썼다.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이불이 천근만근 가볍디 가벼운 이불이 이렇게 무겁다고. 숨이 막혔다. 평안하리라 여겼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마음속에서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주변이 알고, 삼일을 쉬면 전 국민이 다 안다'라고 안정환 선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새벽에 일어나 해 오던 루틴대로 거실 내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근까지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10초 아무리 느려도 20초 이내다.
퇴직 후 거실 위 식탁은 내 일터이자 놀이터다. 그 안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시때때로 공상과 멍 때리기를 반복한다. 습관처럼 베란다 너머 앞산을 바라본다. 베란다 너머 새벽은 어두웠다. 기지개를 쭉 켜고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날이다. 30대, 40대 내가 썼던 글들을 정리해 놓은 파일을 찾았다. 30대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2003년 12월 31일 수요일 전남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200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특집으로 광주고용센터 3인의 2003년이라는 인터뷰 기사가 실린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 2003년을 마무리했듯이 2024년과 나의 30대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 그때는>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 삼팔선(38세도 정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2003년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웃지 못할 신조어였다.
유행어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슬픈 현실을 반영했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던 해. 가장 힘들었던 IMF 때 못지않게 힘들었던 한 해를 보내며 느낀 소회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 칼날 같은 현장에 있었다. 그곳에서 부도, 실직, 미취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같이 했다.
구조조정의 칼날을 온몸으로 맞고 회사에서 쫓겨난 가장은 퇴사했다는 말을 가족에게 하지 못한 채 매일 양복을 입고 공원으로 출근을 하기도 했다.
2년 동안 이력서를 300번을 썼던 취업 준비생, 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그 돈을 갚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사회의 냉대 속에서 좌절하는 사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홀대받은 이들,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 사람, 무수히 많은 좌절로 실의에 빠져 우울증에 걸린 사람.
2003년에 우리가 만났던 세상에는 당시 사회, 경제, 정치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2003년 한 해 동안 고용센터를 찾은 사람은 6만여 명이었다. 그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그 시절 우리가 내렸던 결론은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취업을 하게 되더군요"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하려고 하는 사람을 당할 재간은 없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기어이 해냈다. 수백 번 떨어져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던 사람은 결국 원하는 대로 취업에 성공했고, 부도로 길거리에 나앉았던 사람도 해 내려고 하니 길을 찾아내 결국은 성공을 했다. 그런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
찾으면 길은 반드시 나타났다. 그것은 2003년뿐만 아니라 2024년도 마찬가지다.
<2024년 지금의 나>
치열했던 그 현장을 벗어나 세번 째 스무 살을 살고 있는 2024년 나.
'세 번째 스무 살 제대로 미쳐라' 글이 나오고 여러군데서 전화를 받았다.
내가 했던 말은 동일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여한없이 일을 해서 좋았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거 여한없이 하고 있으니 좋다고.
정년퇴직 후 첫 해인 2024년 버킷리스트를 완수했고, 특히 전자책으로 낸 '세 번째 스무 살 제대로 미쳐라'가 예스24 전자책 에세이 부문 1위까지 되었다.
이보다 더 멋진 2024년이 어디 있으랴.
꿈을 꾸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 그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2024년이었다.
60대인 나에게 찾아온 30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안녕, 나의 30대. 그때 네가 있어 60대인 담서제미가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네.